BACK TO LIST
PREV NEXT
한소리, <이달의 북 큐레이션>

『망작들』,『있으려나 서점』

  웹진 < 아는사람 >이 매월 10일 발행되는 월간지로 바뀌면서, 아무래도 웹진 운영자 중 누군가가 필진이 되어 고정적으로 책 큐레이팅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현재 주기적으로 연재 예정에 있는 기획이 없는 상태이기에, 어쨌거나 ‘아는사람’들이 기대하든 안 하든 “맞아, 여기 그런 거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누가 책 큐레이팅을 맡아 매월 좋은 콘텐츠를 내주면 좋을까,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말을 꺼낸 사람이 하게 된다는 절대적인 국룰을 지키게 되어 노트북을 켠 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책 큐레이션은 원래부터 하고 싶긴 하였으나 여유가 없어서 진행하지 못한 기획이었는데, 어찌 되었든 이렇게라도 진행하게 되어 마음속 한 칸의 짐은 비워둔 기분이다. 한마디로 개운하단 뜻이다.

  오는 7월,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던 나는 블라인드가 없어 치명적으로 내리쬐는 햇볕에 세 시간이나 노출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때문에 에어컨을 18도로 켜 두어도 여전히 더운 날씨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여름이구나,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던 나는 문득 ‘상상’을 하고 싶어졌다. ‘만약에…’라는 말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없는 것 없이 모두 존재하는 세계. 그런 세계 속에 빠져 이 무거운 더위를 벗어던지고 마음껏 웃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두 권의 책, 『망작들』과 『있으려나 서점』을 이 글을 통하여‘아는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망작들』 리카르도 보치 지음 진영인 옮김 | 꿈꾼문고 | 13,000원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이 21세기 마케팅 전략과 정치적 올바름을 마주한다면?’이라는 카피라이팅이 책 뒤표지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이 책은 실제로 “만약 널리 이름을 알린 세계문학사의 작가들이 현대의 출판사에 그들의 작품을 보내온다면, 편집자들은 어떤 피드백이 담긴 답장을 보낼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추천사를 쓴 CBE 라디오 PD 정혜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쓴 책이 인기 없는 것을 위로받으려고 했다. 세계적인 명작도 거절당하는 마당에 내 글쯤이야 아무렴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훨씬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들은 출간되고 말았다!”라고 그의 감상을 표현했는데, 이는 곧 이 책에서 ‘이유’들을 찾아가며 낄낄 웃기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기도 할 여러 독자의 마음을 충분히 대변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세계문학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발췌가 쉽고 재미있었다. 그럼, 이 책이 어떤 식으로 세계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을 거절하는지, “당신의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이유” 몇 가지에 대해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소포클레스 씨께

작가님 이름을 짧게 줄이면 어떨까요? 

‘소피’라고 부르면 이상할까요? 
기분 나쁘시라고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이 작가님 나라 말로 ‘지혜’라는 뜻이라면서요. 
그러니 작가님한테도 좋은 이야기죠.)

12p,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中


블라디미르 씨께

이 이야기는 

글렀어요, 글렀어요, 글렀어요, 글렀어요, 글렀어요. 
왜 반복하냐고요? 
주인공이 험버트 험버트라면서요. 
이름이 왜 이래요?

42p,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RLS 씨께

우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다중인격이라는 주제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것 같다고요.
그/그들은 언젠가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겁니다.

다른 한편 이런 의문이 드네요.

왜 인격이 둘뿐인가요? 
그 수가 너무 적고, (여러 가지 의미로)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왜 선과 악뿐이죠?
 (그리고 왜 선과 악 모두 백인이고 남자고 이성애자인가요?) 

게이 하이드, 여성 하이드, 흑인 하이드는 왜 없나요. 
레즈비언, 멕시코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채식주의자, 자연주의자 등등. 
어떤 정체성이든 포괄할 수 있을 만큼 
다중인격이 되면 어떨까요. 
(그만큼 이야기가 더 풍부해질 것 같습니다.)

65p,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12,800원

  “조금 이상한 책, 있을까요?”


  특이한 이름의 서점에서는 조금 이상한 책들을 판매한다. 한 장 한 장 정말 있을법한 놀라운 이야기가 채워져 있어 가지고 있던 내 안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일깨워주는 기분.

  그 마을의 변두리 한 귀퉁이에 ‘있으려나 서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책과 관련된 책’ 전문점이지요. 
주인아저씨에게 “혹시, ○○에 대한 책, 있나요?”하고 물으면, 
대개는 “있다마다요!”라고 대답하고 찾아서 꺼내다 줍니다.

2-3P, 『있으려나 서점』 中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책, 정말 “있으려나?” 싶은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다양한 상상력을 구심점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가 있지?”라는 탄성을 여러 번 뱉었는데, 그것은 내가 웹진 < 아는사람 >에 있어 새로운 기획을 도모하게끔 만드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럼, 정말 “있으려나” 싶은 서점을 잠시 방문해 구경해보자.


  ① 70여년 전에 우연히 발명된, ‘달빛 아래서만 드러나는 특수 잉크’로 인쇄된 책입니다.
  ② 그 때문에 햇볕이나 전등불 아래서는 그저 하얀 종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③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 달빛 아래서만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은 달과 관련된 동서고금의 전설이나 짤막한 이야기, 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④ 같은 특수 잉크를 사용한 ‘달빛 펜’(별도 판매)으로 ‘달빛 아래서만 보이는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⑤ 초승달이 뜬 밤에도 읽을 수 있지만,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제한적입니다.

  『달빛 아래서만 볼 수 있는 책』

  포장지와 리본으로 (선물용)
  종이봉투로 (본인용)
  타임캡슐로 (천년 후의 인류용)
  노끈으로 (취객용)
  파이 반죽으로
  털실로
  바나나 잎으로
  수영 킥 판으로
  글러브로
  캐스터네츠로
  준비물 주머니로
  돈가스 튀김옷 재료로
  뱀장어로
  점장의 변덕스러운 포장재로
  연어로
  몸에 묶어서

  『책 포장법』

  ① 언제 출간됐는지,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 모르지만,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은 책 한 권을 헌책방에서 구입합니다.
  ② “이거, 무슨 책으로 보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③ 상상해서 그 책의 ‘해설서’를 쓰게 합니다.

  『상상력 릴레이』 中


  이렇듯 두 책에는 우리가 한 번쯤은 상상했을 법한, 혹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읽고 나면 계속 상상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둘 다 빼곡한 글로 이루어진 책이 아닌, 귀엽고 재치 있는 일러스트들이 꽤 많이 들어가 활자의 따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사람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왜, 과거의 것 혹은 아날로그적인 무언가를 현대에까지 끌고 와서 그것을 재해석하거나 다시금 상기시키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시도를 체험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장을 넘겨보거나 서점으로 가 장바구니에 담아보자. 무엇보다도, 재미는 100% 보장하겠다.


한소리
웹진 아는사람 기획자

읽는 책보다 사는 책이 더 많은 사람.
누가 보면 책을 광고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돈내산 후기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