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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 유 삘 마 하트비트?

내 심장에는 방이 아주 많다.

  내 심장에는 방이 아주 많다. 좌심방에서는 박효신을 비롯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우심방에서는 김연아와 피겨선수들이 활주하고 있으며, 좌심실에서는 작가, 성우, 배우들의 이야기가 왁자지껄하게 흘러나오고, 우심실에서는 키움 히어로즈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여러 가지를 덕질하고 있다. 이른바 ‘잡덕*’인 거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으며 가장 마음을 많이 준 존재는 나의 ‘최애’들이다. 나는 내 반평생을 덕질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내 반려는 ‘덕질’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책, 김연아, 박효신, B1A4, 작가들, 한국 성우, 피겨, 오마이걸, 프로야구… 그 외 등등.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새로운 곳에 가거나, 낯선 누군가를 내 집에 들이는 것만이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방법은 아니다. ‘덕질’을 하면서도 사랑하고, 위로받고, 웃고 울고 화내며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었다. 일상에서도 그러하듯 때때로 깊은 회의와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덕질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덕질은 일상생활 속 대화처럼 쌍방향적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데, 나를 포함한 덕후들은 어찌하여 덕질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한 분야만 덕질(좋아하여 파고드는 것)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덕질하는 것

사진1) 아이돌 그룹 오마이걸 사진. 

  사실 정확하게 소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너무나 다양하게 덕질하고 있으니까. 나도 아직 정확하게 이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딱 각 잡고 봐야지, 덕질해야지, 하고 시작한 건 하나도 없다. 내가 끌리고 좋아야 시작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감기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흐르고 흘러 덕질을 시작한 사람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아무도 자세한 이유를 모른다. 정말로, 그냥, 어쩌다, 어느 순간, 하는 거다. 사랑에 왜 ‘빠질’까? 왜 사랑은 ‘하게 될’까?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스며들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나의 최애 몇을 잠시 소개하겠다. 박효신에게 입덕한 건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사랑한 후에’를 여러 번 들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박효신을 반복해서 검색하고 있었다. 사실 얼굴도 한 몫 단단히 했다(아저씨가 애교부리고 예쁘게 웃는데 거부감이 안 드는 건 처음이었다). B1A4에 빠진 계기는 다른 때보다 명확한 편이었다. 멤버 진영이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총소리에 맞춰 손으로 총 쏘는 제스처를 한 것 때문이었다. 한쪽 눈을 살짝 감고 웃고 있었는데, 가사 그대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B1A4에 이어 내리사랑으로 오마이걸을 사랑하게 되었고, 드라마 CD와 애니메이션, 라디오, 게임 등에서 찾아 들은 한국 성우의 목소리와 연기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빠져 보기 시작한 프로야구는··· 집에서 누가 보고 있기에 그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점점 선수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게 다였다. 그래서 내가 야구를 왜 보고 있는지 아시는 분?


사진2) B1A4의 진영.지금은 그룹에서 탈퇴한 상태다.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느라 즐겁고 정신없지만, 사실 난 처음에 ‘잡덕’을 배척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바로 그 잡덕인 줄도 모르고. 함께 B1A4를 좋아하던 친구가 어느새 다른 여성 가수 얘기만 하자 괜히 서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말로는 아직 오빠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듣는 노래나 나에게 하는 얘기는 모두 다른 가수 얘기였다. 친구의 최애 멤버에 대해 얘기해도 반응이 떨떠름했다. 나는 관심도 없는 가수 얘기를 온종일 듣고 있자니 괴로웠다. 

  분명히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는데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박효신을 더 많이 찾고 있었다. 용돈을 모아 엄마 몰래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가 군인 시절 진행한 라디오를 자습 시간 내내 들으며 공부했다. 그렇다고 내 아이돌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젠 의리가 더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 친구와 멀어지고 대학생이 된 후에야 그 친구와 잡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덧 잡덕 n년차, 나는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쁜 건 없다. 굳이 꼽자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 정도?

  사람이 모든 것에 열정적일 수는 없고 모든 걸 잘할 수도 없다. 사랑하는 것이 많아 내가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힘들 때 사진 한 장, 노래 한 곡, 영상 하나만 보고도 씩 웃고 힘낼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된 것 아닐까? 마음껏 설레고, 마음껏 웃고, 마음껏 울고, 마음껏 위로받기가 어려운 요즈음이다. 특히 근 십 년간 마음껏 소리 내어 울어본 경험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나에게는, 노래와 책과 또박또박한 말투로 위로를 건네어 주는 누군가가 많이 필요했다.


  즐기는 분야가 늘어날수록, 최애가 많아질수록 나의 세계는 조금씩 풍요로워졌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전에 읽어본 적 없는 책을 읽고, 최애가 관람한 전시회가 궁금해서 갔다가 이런 화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뮤지컬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콘서트는 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매번 다르니까 올콘**을 뛰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스포츠의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피겨선수가 실수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클리어 했을 때, 선행주자를 견제하던 투수가 결국은 주자를 견제사 시킬 때,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가 보란 듯이 홈런을 때려낼 때. 나의 덕질과 최애는 내가 취향을 찾는 것도, 스스로 행복을 찾아 웃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콘서트 회차가 여러 차례 있는 경우 모든 회차를 관람하는 것. 보통 ‘올콘 뛴다.’라고 말한다.

‌  즐기는 분야가 늘어나 최애가 많아질수록 나를 돌아볼 시간이 줄어들기도 했다. 사람이 언제나 뜨거울 수는 없는 법이라서, 덕질을 멀리하는 때도 분명히 있었다. 나에게 여유가 없을 때는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좋아하는 일도 멀리하고 쉬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나에게 에너지가 충분히 남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잠시 과열된 나를 식히고 돌보는 건 아주 중요하다. 이럴 땐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그냥 가만히 이불을 덮고 누워 멍을 때려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자극에서 떨어뜨려 두었다.

‌  덕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다. 나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지나갈 때까지 그 분야를 멀리했다. 야구를 보다 보면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이 생긴다. 처음에는 열심히 화냈다. 왜 저 공을 놓치지? 공이 뜨거웠나? 왜 떨어지는 공에 배트를 휘두르지? 왜 홈플레이트를 안 밟았지? 선행주자 견제를 왜 변화구로 하지? 무사만루에서 왜 점수를 못 내지? 포수가 공 3루로 던지라고 했는데 왜 1루로 던지지? 왜? 왜? 왜? 그러나 곧 이건 내가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사항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냥 받아들였다. 혹은 멀리했다. 잠깐 그런다고 해서 내가 야구와 팀을 싫어하게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덕질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았다. 어차피 덕질하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그렇지만 내팀 내까다. 다른 사람이 까는 건 용납 못 한다). 오히려 내가 이걸 왜 좋아하나, 이 사람을 왜 좋아하지? 생각하면서 더 정이 들기도 한다. 정 아니라면 떨쳐버리면 그만이다. 나 행복해지자고 하는 덕질을 굳이 스트레스 받으며 할 필요는 없으니까. ‘과몰입’하게 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야구를 볼 때는 미친 듯이 화를 내고, 박효신이 마지막 콘서트 이후로 아직도 소식이 없어서 “혀어닌~”하며 우는 소리를 내고, 그가 새 앨범을 내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이 패턴을 몇 번씩 반복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내 삶과 덕질의 비율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과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새로운 소식이 뜨면 열심히 운다. 왜 이제 왔냐며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일한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사진3) 한때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던 때. 출처는 노컷뉴스

  고등학생 시절에는 B1A4가 사재기 루머에 휩쓸려, 입에 담지도 못할 심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한참 음반 사재기의 빈도가 늘어나 가수의 팬이라면 예민할 수밖에 없을 때였다. 다른 가수의 팬이 증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걸 팬들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 가져가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을까. 결국 사재기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만 도서관 1층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누군가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 가수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했기 때문에 속상했다. 내가 내 공부를 못해서 시험 성적을 챙기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속상했다. 한동안 눈이 부은 채로 다녔다. 

  이후부터는 그런 일이 생겨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라.’ 하고 만다. 난 내 일을 하고 계속 최애를 응원하면 되는 거다. 그냥, 더러우니까 피하면 된다. 과하게 몰입하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소설이나 시를 쓸 때처럼 덕질도 어느 정도 나와의 거리가 필요하다. 덕질이 일상을 잡아먹도록 두면 안 된다. 덕질을 시작한 지 13년 만에 깨달은 점이다. 

  물론, 과몰입의 장점도 있다. 세상만사 어떻게 나쁜 점만 존재할 수 있나? 나는 과하게 몰입하면서 무언가에 깊게 파고드는 법을 배웠다. 박효신 콘서트에 갔더니 신곡 가사부터 VCR까지 모두 사랑,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 그들을 맞이하고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콘서트가 시작되자마자 그의 메시지를 직감적으로 읽은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티켓 한 장을 더 예매했다. 1년 동안 쭉, ‘환대’에 꽂혀 있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약자에 대한 시각도 새로이 세워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만난 뒤, 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게 된 거다. 나의 세상은 덕질이고 덕질은 나인***,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반려가 된 거다.

‌***박효신의 7집, 『I AM A DREAMER』의 첫 트랙 「Home」의 후렴 가사 일부분이다.
원래 가사는 “나의 세상은 너, 너의 세상은 나인 거야”다. 추천하는 노래!


  올해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또한 상반기 내내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다. 공연과 덕질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이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줄줄이 공연이 취소되고, 영화관은 가지도 못해 쌓이기만 하는 스트레스를 야구가 대신 풀어주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이제는 야구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육성보다는 박수로 서건창과 박병호의 응원가를 부르고, 마스크를 낀 채로 회의하는 게 익숙해졌다. 전염병 때문에 갑자기 멀어진 거리가 얼마나 어색한지.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기 전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아직 공연과 콘서트는 나에게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내 최애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광대가 아플 정도로 올라가고, 입이 귀에 걸린다. 사람이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귀여워 보이거나 이름만 들어도 애틋하면 정말 중증이라던데… 이 글을 읽어준 독자들과 내 최애들에게 묻고 싶다. 캔 유 삘 마 하트비트?


✌ 팀소동 솔비
solbi0728@naver.com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저 언젠가 다 지나갈 따름이라고 생각하여 버팁니다.
혼란스럽고 따뜻한 여름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