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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확실한 사랑을 좋아해?

―우리에게 들러붙은 감정에 관하여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여러분을 ‘당신’이라고 칭하려고 한다. 또 필자나 저 대신 ‘나’를 당신의 앞에 세워 두겠다.
  당신은 반려 뒤에 어떤 글자를 넣어 봤는가? 반려자, 반려동물, 반려식물, 혹은 반려… 음식?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반려인형, 반려장소, 반려식물…. 다소 허무맹랑한 생각 끝에 ‘반려-감정’을 선택했다.

  상상을 하나 해 보자. 우리가 수많은 감정 중 단 하나만을 택할 수 있다면, 하나의 감정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고를까? 쉬운 선택은 아닐 것이다. 감정이 건조한 사람은 있어도 단 하나의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질문하는 나조차도 어느 것 하나를 꼭 집어내기가 망설여진다. 당신과 내가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감정이 단일하게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 노여움과 미움처럼 비슷한 계열의 감정은 대개 동시에 발생한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슬픈 영화를 볼 때 눈물을 흘리면서도 문화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상극으로 보이는 감정도 동시에 발생하곤 한다.

  감정은 복합적이고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그런 감정을 선택해서 살 수 없다. 감정을 음식으로 따지면 ‘피자’가 생각난다. 보통 여섯이나 여덟 조각으로 나뉜 피자는 토핑에 따라 각 조각이 다른 맛을 내기도 하나, 어쨌든 한 판에 함께 구워져 나온다는 점이 우리의 감정과 닮았다. 조각의 크기가 다른 것도 감정과 유사하다. 당신과 나의 피자는 사용된 재료도, 크기도, 맛도 다를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당신과 내 피자 중 두 조각을 나누어 먹고 싶다.


사진1) 내용과 관계 없는 피자 사진 

  첫 번째 피자 조각, 사랑

  나의 오래된 고민은 이 조각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사랑을 빼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때 사랑은 글 안과 밖,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글 안에서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주체의 마음이다.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진 않았지만, 사랑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나 주체가 대상을 미워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미움은 ‘사랑이 선행된 후’라는 조건이 따른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원동력’ 때문이다. 대상을 기록하는 일, 대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일, 대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다른 세계를 펼쳐내는 일 모두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의 원천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 또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디서 원동력을 얻고 있는지도. 사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랑에 ‘영원’이나 ‘순수’ 같은 속성을 부여할 필요도 없다. 매 순간 마음이 바뀌는 것이 사람이고, 그런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복잡하니까.


  나에게도 수많은 사랑이 있었으나 그 모습이 늘 한결같진 않았다. 지나간 인연들을 예로 들면 상대를 불같이 사랑하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옅어졌고 미움이나 노여움으로 변하기도 했다. 평생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일을 그만둔 적도 있다. 나는 중학교 때 국악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때는 사진을 전공했으며, 대학에 와서는 글을 쓰고 있다. 현재는 또 다른 일에 빠져 도전 중이다. 물론 모든 일에 이런저런 후회가 남아 있으나 다시 기회가 주어져도 “아니요”라는 대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일들에 내 인생의 절반을 넘겨줄 만큼의 열정이 없다. 이처럼 사랑은 언제나 변한다. 좋았던 게 싫어지기도, 싫던 게 좋아지기도 한다. 당신이 ‘그건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연하지.’이다.


  사랑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는, 사랑을 고결한 것으로만 다루면 보통의 사랑이 없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쁨, 즐거움, 노여움, 슬픔, 미움 등이 뒤섞인 마음은 진정한 사랑에서 배제되고, 사랑을 ‘확실한’ 기준에 부합하는지 재보며 판결대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판결에서 낙오된 사랑은 빛을 잃게 된다. 사람들은 ‘확실한 사랑’을 갈망하는 것 같다. ‘나는 너를 좋아해―너도 나를 좋아해’와 같은 양방향 사랑과 ‘나는 너를 무한하게 사랑해!’ 같은 올곧은 사랑이야말로 진정성 있고 열정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지나온 사랑들이 다른 감정과 혼재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의 변덕처럼 취급되는 건 나도, 당신도 바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의 사랑은 어떻게 변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내 부탁을 고맙게 받아들여 깊이 생각했다면 이런 질문이 생길 것이다. ‘애초에 사랑만 존재하는 사랑이 있어?’


사진2) 내용과 연관 없는 비치볼 사진

  두 번째 피자 조각, 미움

  사랑만 존재하는 사랑, 그러니까 ‘정확한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이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 않다. 사랑만으로 가득한,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이 나는 사랑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토록 완벽한 사랑이 오늘 여기에 설 자리는 없다. 나는 우리가 하는 평범하고 가끔은 추잡스럽기도 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 보통의 사랑, 그 반대편에는 미움이 존재한다. 미움은 사랑을 더럽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랑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부분들을 메우고, 바꾼다. 나의 사랑은 글에서 가장 명확히 나타난다.

  나는 종종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그렇게 시작한 글은 대부분 미완으로 남는다. 사랑에서 비롯된 원동력이 부족해서이다. 물론 글을 완성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원동력이 끝까지 함께했단 것이고, 숨겨둔 진심을 깨달았단 것이다.

  지난여름, j에 관해 글을 썼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단편적인 이야기를 나열한 글이었고, 한 편에 j의 자리가 있었다. j는 고등학교 선배다. 내 학창 시절을 복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기도 하다.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매번 버겁다. 감히 내 글에 그를 앉히는 게 미안하고, 내가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 것 같아 억울하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나와 j가 무엇을 했고, 또 나누었는지 명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내 상처를 전부 드러낼 수 없음을 당신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 시절 나는 향수를 정말 좋아했다. 시판용 향수로는 성에 차지 않아 수제 향수 가게를 찾아서 갈 정도였다. 나는 내가 쓸 향수보다 그에게 선물할 향수를 더 신중하게 골랐다.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때에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줄 책을 한 권씩 더 고르곤 했다. 밥을 먹을 때나 학교에 갈 때도 그를 우선시했다. 나의 사랑은 ‘주는 방식’이었고, 목록은 삶 전체였다. 덕분에 우리는 늘 함께였다. 그 시절의 일은 삶에 진득하게 눌어붙기 마련인데 그런 마음까지 품었으니 오죽했을까. 그 마음이 무너졌을 때, 내 사랑은 미움으로 변했다. 정확히는 변한 듯했다.
나는 오랜 시간 j를 미워했다. 그에 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미움을 잔뜩 이용하려는 속셈에서였다. 내 글에서 그를 욕하고, 또는 반대로 그를 주체로 세워 나를 욕하면서 분을 풀 작정이었다. 그 앞에 선 나를 객관화하려고 했다. 우리의 관계가 사랑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고, 상자에 넣어둔 마음을 이제는 실컷 부수고 잘게 쪼개어 날려버리고 싶었다.


  나는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았다. 몇 개의 문장으로 쪼개질 마음이 아니었다. j를 향한 미움이 사실 사랑이란 걸 깨달았을 때도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번개에 맞은 것처럼 파바박, 하고 알아챈 것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문득문득 나타나는 그의 형상에 서서히 진짜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결국 사랑이 있거나 사랑에서 비롯된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서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질문했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는 무엇을 미워하는지, 그 미움은 어떤 형태로 시작됐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삶에 자리 잡은 인물과 일, 어떤 것이라도 감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랑이 있을 것이다.


사진3) LOVE라고 검색하면 첫번째로 나오는 이미지.

  마지막으로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제목에 있다. 당신이 어떤 대답을 준비했을지 아주 기대된다. ‘음….’ 같은 말이 맴돈다면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꽤 심도 있는 수준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대답은 ‘우리는 확실한 사랑을 좋아해’이다. 미움, 슬픔, 노여움 등이 들러붙을지라도,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우리는 사랑을 좋아해!’라고 말하고 싶다.


팀소동 박하
de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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