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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유용성의 사이

마리모를 키워본 적이 있나요?

  예전에 서점에서 반려식물 마리모를 파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선물용으로 좋다고 하는 식물이다. 다들 한 번씩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키워 본 경험이 있다면 앞으로 나올 이야기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마리모는 공 모양의 집합체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담수성 녹조류의 일종이다. 물에서 기르는 수경식물인데 가끔 기분이 좋을 때 물 위로 떠오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마리모를 키우면 마치 감정을 교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마리모는 행운의 상징, 편리함 등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장점들이 부각되고 있는데, ‘반려식물’이라는 점을 통해 책임 의식을 기를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도 있다고 한다.


‌  ‘책임 의식’을 ‘반려’와 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마리모를 ‘키운다’. 이는 마리모가 우리에게 있어서 ‘반려’의 위치에 있으며,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마리모를 열심히 키우려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물 위로 떠오른 마리모가 가져다주는 행운처럼 자신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식이 주이지 않을까. 결국, 마리모를 키우려는 것은 책임 의식을 갖고 더 큰 마리모로 키워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말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사진1) 저작권 없는 마리모 이미지를 찾지 못해 마리모와 비슷한 공 사진을 가져왔다.

  모든 것이 유행하다 보면 ‘가짜’가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짜 마리모 또한 공 모양을 하고 있는 풀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물에 떠오를 수 없는 마리모이다. 그렇다면 마리모의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전설은 전혀 소용없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마리모가 가짜인지, 진짜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 가짜 마리모를 보면서 마리모가 떠오르기를 기다릴까. 마리모는 그저 어항 속에서 가만히 ‘방치’된다. 우리는 마리모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마리모의 진위를 구별하는 방법은 마리모를 태워보거나 끓여보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직접 뜯어보는 것도 하나일 것이다.

  그 방법들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우리가 마리모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매일 마리모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마리모에게 좋은 말을 하려 노력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면. 마리모가 진짜인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태울 수 있을까. 우리에게 ‘마리모’라는 식물이 힘든 일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는 마리모가 진짜임을 직접 확인하고자 알려진 방법들을 실행하기까지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마리모가 진짜라면 불에 태웠을 때 없어지고 가짜라면 갈색으로 타들어 간다고 한다. 그렇게 불에 타서 없어진 ‘진짜’ 마리모를 보면서 진짜라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 확인일까. 반려의 기본 전제는 모든 것을 평생 함께 누리는 동등한 지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확인’하는 과정이 반려와 상관관계가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저 우리가 반려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 반려라고 할 수 있을까. ‘반려식물’ 마리모가 가짜인 것을 알았을 때도 ‘반려식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리모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를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반려식물도 많다. 실내 공기정화를 위해서 집에 배치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인간과 식물의 지위가 동등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부분 식물을 관리하다가 상해서 집의 인테리어 역할을 하지 못하고 공기정화의 역할이 다 했을 때도 식물을 계속해서 집에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해당된다.

  한국동물병원협회와 한국수의임상포럼이 공동 주최한 ‘2020 반려동물과 사람의 유대 원헬스 포럼’에서는 반려동물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개한다. 더불어 반려동물의 존재 자체가 아동의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있으며, 반려견이 사람의 신체활동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각종 질병 증상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것도 잘 알려진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반려동물을 ‘사회적 자산’이라고 평가하며 사회구성원들의 교류와 활동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결과는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식물이나 동물을 ‘반려’하는 태도가 아니다. 마리모가 가짜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갖고 있던 감정들은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 것일까.


사진2) 김초엽 작가와 그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반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감정의 물성」이 떠올랐다.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물체가 사실은 마약이라고 밝혀지는 부분은 가짜 마리모를 확인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감정의 물성」은 정하라는 에디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모셔널 솔리드라는 문구류 회사가 1년 만에 내놓은 제품으로 큰 흥행에 성공한다. ‘감정의 물성’은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다. ‘행복’, ‘편안함’, ‘우울’, ‘공포’, ‘침착, ‘설렘’ 등 여러 감정이 있다. 정하는 감정의 물성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에 정하는 오랜 애인 보현이 ‘우울체’라는 작은 돌을 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감정의 물성은 계속해서 유행한다.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소비하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왜 사려고 하는지 궁금하다는 정하의 질문에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예시로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무서운 영화를 보려고 하는 행동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맥락이다. 사람들은 감정의 물성을 통해 ‘침착함’을 얻거나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우울체’를 구매하는 이유도 우울체에 우울함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우울한 감정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감정의 물성」에서 다루는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다른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 정하는 회사를 나가는 동안 계속해서 감정의 물성이 유행하는 상황을 겪는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대체품이 등장해서 값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정하는 사람들이 왜 감정의 물성을 사는지 그 이유 자체를 납득하지 못한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허블, 2019, p.205


  후배는 그런 정하에게 감정을 옮길 수 있는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던 감정의 물성이 사실은 일반적인 생활용품에 향정신성 약물들과 유사한 물질을 섞은 것임이 밝혀지고 모두 판매 금지가 된다. 하지만 이모셔널 솔리드의 홈페이지가 완전히 닫힌 후에도 정하의 애인에게는 수십 개의 ‘우울체’가 가득했다.

‌  「감정의 물성」에서 우울체가 결국 마약 성분을 가진 물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감정의 물성도 인간들이 곁에 두는 ‘반려’의 일종이었다. 모두 사람의 필요로 인해서 소비되던 것이다. 결국 마리모도 사람들에게 감정의 물성과 같이 소비되는 것이 아닐까. 기분이 좋을 때 떠오르는 특징을 가진 마리모를 반려식물로 키우면서 사람들은 마치 마리모의 감정을 교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명이 길고 관리가 어렵지 않아서 키우기에도 간편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마리모. 그 편리함은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 의식’과 닿아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반려식물’에게 가졌던 감정도 결국 우리를 통해서 유통되고 파기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과연 ‘반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믿던 것이 가짜임이 탄로 나면 그 물건들은 인간의 필요와 불필요 사이 어떤 축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 팀소동 현
jinsil45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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