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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예능프로그램 <싱어게인>에서 환대의 공간 그리기

  2021년 2월까지 나를 열광시킨 예능프로그램이 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 싱어게인 >이다. 그 프로그램을 두세 번씩 반복해서 시청하고 동영상 사이트에서 무대를 연이어 찾아볼 정도로 좋았다고 이야기하면, < 싱어게인 >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또’ 오디션 프로그램이야?”, “보나 마나 자극적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들은 이 경쟁 프로그램에 지친 지 오래다. ‘경쟁’이라는 플랫폼은 프로그램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까지 열띤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한국 최초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K >, < 프로듀스 > 시리즈 등은 대부분 ‘경쟁’이 메인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참가자끼리의 경쟁 과열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방송 밖 시청자들의 투표 과열까지 불러들였다. 실제로 프로듀스 시리즈 중 하나였던 < 프로듀스 X 101 >은 자신의 ‘최애’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국민 프로듀서들끼리 아이패드, 여행권 이벤트 등을 열어 투표 인증을 독려한 적이 있다. 재미를 위주로 한 예능조차 이 경쟁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피로도도 이해가 된다.

  ‘무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에 관한 질문을 건넸을 때 아마 대부분은 무대 중앙에 선 ‘가수’만을 얘기할 것이다. 어쩌면 더 나아가서, 그 가수의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밴드)까지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 싱어게인 >의 무대를 구성하는 사람은 아주 다양하고 많다. 그것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연주자들을 넘어서 그 무대를 지켜보는 심사위원,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기획자에게까지 뻗어 나간다. 내가 < 싱어게인 >에 이토록 환호한 이유는 가수, 심사위원, 기획자들이 만들어낸 무대가,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오디션 프로그램 중 가장 ‘치열한 환대’를 보였기 때문이다.

  ① 가수

  하지만 무대에서 가장 먼저 대표되는 인물이 ‘가수’인 만큼, 가장 먼저 그들에 관해 얘기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 < 싱어게인 >의 가수들은 모두 앨범을 한 번씩은 내본 사람이다. 그 중엔 일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탈락해 사라진 사람들, 유명 드라마의 OST를 불렀으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물론 오랜 무명 기간을 보낸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름이 불린 적 없’거나, ‘이름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드라마, 예능, 혹은 한 세대를 대표했던 음악가였으나 이제는 사용됐다가 버려진 구성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우리 중 누구도 한때 열광을 불러일으켰던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 싱어게인 >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출연진들은 모두 이름을 가리고 1번부터 71번까지 오직 번호로만 등장한다. 물론 이 번호는 프로그램 자체에서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출연자들이 직접 번호를 향해 손을 뻗어 그 자리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무대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는 또 어떠한가? 이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라이벌전에서조차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한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가수와 OST를 부른 유명 가수가 함께 극복의 과정을 밟는가 하면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에도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영어 가사를 외우기 어려워하는 출연자에게 젊은 나이대의 출연자가 박자를 맞춰주는 장면은 아직까지 내 기억에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떨어지는 건 슬픈 일, 실수는 수치스러운 일, 돕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국한된 이미지들을 < 싱어게인 > 속 출연진, 가수들은 한 번에 뒤집어버린다. 우리는 어느새 떨어지는 건 아프지 않은 일, 실수는 그럴 수 있는 일, 누가 누군가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을 가진 채 무대를 보게 된다.

  라이벌전에서 떨어진 가수 중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가 차돌 짬뽕을 먹을 것”이라고 유쾌하게 얘기한다. 선곡이 아쉽다는 평으로 결국 탈락하게 된 출연자 중 한 명은 마치 해방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습니다. 아주 후련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에게 ‘다음’이 있는 것을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 싱어게인 > 속 가수들의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는 구성을 보며 침울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진2) 싱어게인에 등장하는 가수는 이름 대신 < 40호 >가수라고 불린다. 

  ② 심사위원

  실제로 < 싱어게인 >에서 라이벌전이 있긴 하지만 이들의 조를 구성하는 과정엔 심사위원 주니어팀(멤버는 슈퍼주니어 규현, 선미, 위너 민호, 다비치 해리 등으로 데뷔한 지 10년 안팎이다), 시니어팀(멤버는 김이나, 김종진, 이선희, 유희열로 활동 시기가 20년에 가깝다)이 직접‘참여’한다. 그들은 아예 색깔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하여 화합을 그려내는 팀을 만들어 내거나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들을 배치하여 시너지를 일으키는 팀을 만든다. 이 프로그램을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경쟁으로 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 그대로 음악을 즐기고 감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 함께한다.


  이런 환대의 공간의 일원으로 작용하는 심사위원들은 다른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 속 심사위원과 달리 냉정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 얼굴을 굳히고 일명 ‘독설’을 날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기존의 경쟁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방영되었던 프로그램들을 생각해보자. 처음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여하지만 그들은 계단을 오를수록 같은 심사평에 부딪히고 만다. “나이가 들어서”, “나이가 있어서”, “어려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앞으로의 무대를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가수들은 늘 이러한 심사평 앞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들에게 노래 외적으로 무언가를 지적, 조언하지 않는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무대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출연진들의 무대를 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세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환호하고 그들을 정면 무대로 환대하는 장면을 그린다. 이러한 태도는 수직적 구조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심사위원들은 출연자들을 ‘깔보지’ 않는다.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47호 가수에게 “마이크를 한쪽으로만 드는 습관이 있다. 중앙으로 가져다 놓아야 소리가 잘 들린다. 그 부분만 고친다면 충분하다”고 얘기하는 유희열 심사위원의 심사평이나, 아이돌 시절 큰 사고를 겪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11호 가수에게 “심사위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 사람의 사연을 배경으로 두지 않고 무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하는 김이나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더 나아가 무대 위에 선 사람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사진3) 심사위원으로 나온 유희열. 

  ③ 기획자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연자들의 표정과 무대를 교묘하게 엮어 시기 질투를 느끼는 악마로 포장하고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거나, 어렵고 힘들었던 가정사 등 그들의 실력 외적으로 알 필요 없는 일대기를 내보내는 신파적 구성을 < 싱어게인 >은 완벽하게 타파한다. 경쟁자 중 한 명을 무조건 떨어뜨려야 하는 자극적인 라이벌전, 곡을 선정하고 파트를 분배하는 과정 중 다툼으로 읽힐 여지가 있는 장면들, 과도한 불행 전시와 그것을 극복하는 영웅 서사를 감동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대신 오직 가수가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과 그들이 준비한 무대 공간만을 조명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준비한 무대는 중간에 잘리거나 편집되지 않는다.

  이렇듯 < 싱어게인 >에서는 냉소가 끼어들 틈이 없다. 심지어 누군가가 탈락하는 순간까지 마찬가지다. 우리가 음악으로 함께 즐거워하고 감동하는 이 무대에서 부정적 감정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공간을 이룬 사람들은 탑 10에 들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 또한 지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1화에서 떨어지든 2화에서 떨어지든, 아주 끝에 탈락하더라도 MC 이승기는 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OO호 가수님,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누군가 불러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름을 호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번호로 된 이름표를 뜯고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참가자들이 대거 탈락했던 10화 끝에서, 유희열 심사위원은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일은 먼저 이름을 기억하는 일 같아요. 오늘부터 저희는 여러분들 이름을 기억했구요, (…) 같이 합주하고 같이 노래하는 날을 기대 하겠습니다.”
 
  공간은 어쩌면 그곳에 있음, 즉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간에 있음에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호명과 명명’은 시기와 질투, 분노나 슬픔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고 함께 어울리고 대화하며 환대하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만 생겨난다.



  최근에 나는 요아리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그는 앞서 얘기했던,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던 47호 가수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는 십 년 전쯤인가 그의 노래를 자주 듣다가 흘러가는 세월 사이에 그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고, < 싱어게인 > 속 환대의 무대에서 그를 다시금 만났다. 또한 마지막까지 양손을 꼭 끌어모으고 응원했던 가수는 한때 ‘점핑’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빠빠빠라는 노래를 부른 크레용팝 멤버 초아다. 나는 < 싱어게인 >을 보며 실력 있고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가수가 그 그룹에 멤버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너드 커넥션이라는 중저음의 훌륭한 보이스를 가진 밴드의 노래를 찾아 듣게 되었다.

  신선한 가수가 이제는 없다고 느껴질 때, 혹은 요즘의 음악재생목록이 허전하고 심심할 때,< 싱어게인 >이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 보라. 당신도 그들을 보며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가수님,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 팀소동 공이

 kim.heat.10@gmail.com
나는 누군가에 의해 아주 조금 친절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