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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 you come to my world?”

  이른 나이에 독립해 햇수로 자취 5년 차인 나는 뚜렷한 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거창하지는 않으나 올해 계약을 연장한 이 집을 포함하면 총 네 곳이 나의 공간이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타인을 내 공간에 들인다. 술을 마신 친구가 집에 가는 것을 힘들어한다면 충분히 침대를 내어 줄 수 있다.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는 친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은 예삿일이다. 아무래도 고질적인 외로움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온다는 것은 곧 나와 ‘함께 있음’을 뜻하니까. 함께라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다수의 사람과 즐기는 시끌벅적한 사교보다 한 사람과 진득하게 눈 맞추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자취방은 더할 나위 없는 모임 장소다.

  지금부터는 나와 같은 사람을 ‘초대자’라고 칭하려고 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공간에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진 사람을 말이다. 초대자가 되는 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실상을 까 보면 좋은 점보다 나쁜 점, 그러니까 불편한 점이 오십 배쯤 더 많다. 그럼에도 기꺼이 초대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공간의 구성과 그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대부분의 공간은 공간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 있겠다. 글을 쓰기 전, 주제를 받고 고민 끝에 이르게 된 결론 중 하나다. 공간만 있어서는 존재를 명확히 하기도, 가치 있는 공간이 되기도 쉽지 않다. 쉬운 예로 한 공간에 에스프레소 머신과 테이블이 있다고 해서 그곳이 카페인 건 아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한다면 그곳은 매우 높은 확률로 카페다. 즉, 공간의 쓰임새는 사용자가 결정한다.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공간이 백 퍼센트 꾸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집’을 이야기해 보자. 사실 집은 목적성을 가진 공간이라기보단 목적을 제외한 공간이라 앞의 예시와는 다르게 작용한다. 집은 상업성을 띠지도 않고, 사무적인 공간도 (보통) 아니다. 어떤 것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지 않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집은 사용자가 없을 때도 공간을 최대한으로 유지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간을 확립하는 것이 집의 사용자이다. 사용자는 ‘집’이라는 하나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노력은 곧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치환된다. 쉽게 말해 안락한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노고가 필요하다. ‘노고’에 해당하는 사항을 큰 폭에서 작은 폭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의 틀 획득(임대차 계약) → 구조물 구성(가구 배치) → 애정 묻히기(인테리어, 질서 유지 등)]

  이 과정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공간을 알아보는 것부터 권리를 획득하고 가꾸는 것은 오로지 사용자의 몫이다. 이 몫을 제대로 해낸 사용자는 언제든 초대자가 될 수 있다.

  개방된 공간이든 아니든, 상업성을 띠든 띠지 않든 공간은 구조물과 사용자가 갖춰져야 한다. 공원이나 버스 정류소 같은 공공시설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정류소로 지정한 땅덩어리 위에 의자와 팻말이 놓이고, 합의하에 버스가 정차하고, 그곳을 이용하는 다수의 사용자가 존재하기에 진정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진1) 내용과 상관 없는 로마 사진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초대자의 공간에선 초대자의 규율을

  노고의 과정을 모두 마친 어느 초대자의 집에 당신을 초대하려고 한다. 혹시나? 역시나다. 당신에게 나의 공간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혼자 사는 삶이 길어지면 그만큼 약속이 늘어난다. 나와의 약속 말이다. 깬다고 해서 누가 개입하거나 꾸중을 들을 일은 없으나 그 약속을 깨면 깰수록 ‘삶의 질서’가 무너진다. 나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혼자인 내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질서를 유지하고 공간을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엉말 중요하다. 작성자의 약속 몇 개를 공개하자면 이렇다.

  1) 컵에 따라 마시고 그릇에 덜어 먹을 것 
  2) 옷은 옷걸이에 
  3) 수건 세탁 시에는 수건만 
  4) 사용한 것은 제 자리에

  보다시피 대단하지 않다. 작은 집 하나 건사하는 데에 뭐 대단한 게 있겠나. 그러나 이 작은 것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나의 생활’을 조직한다. 그렇기에 지켜야 하고, 지켜 줘야 한다. 타인이 이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그건 초대가 아니라 침범이 되는 것이다. 고유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침범 사태’를 막기 위해 한 명의 초대자로서 손님에게 바라는 점 몇 가지를 짚어 보자면 아래와 같다.
 
  ㄱ. 밥을 먹었다면 치우자
  보통의 초대자들은 ‘괜찮아.’라고 말한다. 본인이 치우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그릇을 씻는 데에도 각자의 방식이 있고, 손님은 당연히 그걸 모른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 두거나, 사용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ㄴ. 배려임을 잊지 말자
  아무리 편한 사이어도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 전에는 물어봐야 한다. 모든 것에는 초대자의 돈 혹은 애정이 들어 있다. 소모품은 넘치지 않게 사용하자.
 
  ㄷ. 무례한 요구는 하지 말자
  집에서 담배 피워도 되냐고 묻거나, 다른 손님을 초대해도 되냐고 묻는 건 자제하자. 물론 모든 대화와 상황에는 맥락이 있다. 초대자가 먼저 흡연을 제안했거나, 다른 손님이 초대자와도 각별한 사이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 된다. 그건 무례하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텍스트 자체보단 그 텍스트를 말하는 상황과 말에 담긴 본인의 요구 사항을 잘 생각하고, 아니다 싶으면 내뱉지 않는 걸 추천한다.
 
  ㄹ. 깨끗하자
  이 항목은 작성자에게만 해당할 수도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더러운 것보단 깨끗한 게 낫다. 타인의 공간에 들어갔다면 그 공간을 해치는 행위는 지양하는 것이 옳다. 자세히 써 봤자 더럽기만 하니까 생각은 스스로 하자.
 
  보는 이에 따라 위의 요구가 깐깐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앞선 요구 사항이 단순히 ‘우리 집을 더럽히지 마!’, ‘물건을 소중히 다뤄!’의 문제가 아니란 점을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딱딱한 활자 속에는 당신이 나의 삶에 편입한 것처럼 나의 공간에도 잘 편입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Welcome to my world!

  집이 곧 세계라고? 비약적이지 않아? 라고 생각한 당신,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언제나 사용자가 될 수 있지만 언제든 초대자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같이 카페, 공원, 버스 정류소의 사용자가 되지만 어느 때에도 그곳의 초대자가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일반적’이라는 표현에 있어 양해를 구한다. 글을 읽는 당신이 너른 벌판을 소유하고 있거나, 제법 괜찮은 카페의 사장이라면… 부럽다.―으로는 집에 한해서만 초대자가 된다. 초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집은 곧 세계다. 고로 “웰컴투마이홈!”은 “웰컴투마이월드!”란 뜻이다.

  작성자인 나는 사실 초대가 달갑지만은 않다. 대접하랴 정리하랴 손발이 바쁘다. 손님이 머무를 때는 물론 떠난 후의 공허함과 더러움(물리적인 지저분함)을 감당하는 것도 피로하다. 그런데도 참 주기적으로 초대장을 뿌린다. “님오늘우리집오실?” 습관성이다. 우스갯소리로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지만 왜 매번 사람을 들이지 못해 안달일까? 보통 초대자는 심심하거나―외롭거나함께즐기고싶은무언가가생겼거나맛있는음식을나누고싶거나이런걸빌미삼아―상대가 보고 싶을 때 초대장을 내민다. 현재의 외로움을 지우고 즐거움을 나누는 게 가장 평범한 이유일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지금의 시간이 과거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

  공간의 불가결 요소는 아니나 공간이 존재함으로 따라오는 것 중 하나가 추억이다. 추억은 물리적인 흔적을 남긴다. 집들이 음식의 소스가 튀겨 벽지에 남은 얼룩, 분위기 전환을 위해 가구를 옮기다 긁힌 바닥 자국 같은 것들 말이다. 비가시적인 기억도 공간을 메운다. 이건 공기와 비슷해서 공간의 구조물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가득해진다. 짐을 정리하다 보면 추억이 물처럼 밀려오는 것도 그래서다. 물건 사이사이 끼어 있던 추억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에. 공간에 깃든 추억은 해당 공간의 사용자만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해진다. 회상할 만한 ‘그때’가 있는 공간은 단단해진다. 그러니까 초대는 단순한 즐거움 이후에도 공간에 힘이 불어넣고 이곳저곳에 애정을 심는다. 초대자의 세계가 더욱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용자가 이런 이유로 초대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세계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그 많은 사람이 모두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비약적인 표현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 마음의 공간이 세계인 사람과 실재하는 공간이 세계인 사람, 두 세계를 모두 가진 사람이 있을 뿐 자신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이 글을 통해 나눈 건 실재하는 공간과 그 공간의 세계였으나 ‘집’이란 공간에는 대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결국 우리는 구분 없이 두 세계를 함께 이야기한 것이다.

  당신이 경력 있는 초대자라면 당신의 세계를 더 마음껏 사랑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아직 초대자가 되지 못한 손님이라면 이 말이 가장 어울리겠다.

  “Will you come to my world?”


🌱 팀소동 박하

de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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