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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19호실을 위해

 
  올해 4월인가 5월인가.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누군가 내게 “네 속에 서러움 많은 할머니가 들어앉아서 그래.”라고 말했다.
 
  나는 가끔 귀신에 씌인 거 같다.
 
  얼마 전 < 19호실로 가다 >라는 단편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 ‘수전’이 느끼는 ‘기혼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삶에 대한 권태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 분노하며,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느낀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호텔 ‘프레드’의 19호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오후 동안 홀로 자유를 즐긴다, 그러나 결국 남편에게 들키고, 그녀는 고집하던 ‘19호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수전과 나는 상황도 나이도 다르지만,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나의 19호실’에 대해 고백할 거다. 대체 ‘19호실’이 뭐지? 하는 분들은 그저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컴퓨터 공학과를 자퇴하고 다시 입시를 준비했다. 재수가 끝나갈 무렵 과외선생님이 내게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7개월간 약을 먹었다. 벌써 3년 전이다.


  그때 나는 지인들에게 내 질병을 알리고 다녔다. 더 정확히 말해서 내 ‘우울’을 전시하고 싶었다. ‘나 이만큼 힘들어!’라고 외치고 ‘힘듦’을 인정받고 싶었다. 보상받고 싶었다. 그들이 나를 걱정하고 보살펴주기를 바랐다.


  내게 ‘보상’은 곧 ‘지지’였다. 그것들로 인해 내가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절실했다. 나는 이 시기를 ‘우울 전시회’라고 부른다. 그것이 ‘나의 19호실’의 시작이다.

  ‘왜 이 사람한테 말할 수 없는 거지? 왜?’
 (생략) 수전이 두려워하던 것이 거기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 경악. 두려움. 
그녀의 남편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남자 (생략)
 
-도리스 레싱著 『19호실로 가다』 수록 

단편 < 19호실로 가다 (p.297) > 발췌, 문예출판사

  소설 속 수전의 집은 대저택이지만, 수전의 공간은 없었다. 공간을 얻기 위해 남편이 아이들을 불러 모아 납득시켜야 했고, 그로 인해 가족회의가 열렸다. 수전은 그 모든 것에 분노하지만 속으로 삼키며 ‘엄마의 방’을 가지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수전의 방’은 제2의 거실로 전락한다.
 
  3년 전,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처음부터 우울증을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엄마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너 지금 너무 뚱뚱해서 보기에도 안 좋고 음침해 보여’라는 말을 날마다 했다.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래서 ‘나 이만큼 힘들어!’를 마치 무기처럼 휘둘렀다. “그딴 말들 때문에 내가 약을 먹잖아!” 나는 엄마가 약간의 죄책감이 들길 바란 것 같다. 엄마 아빠는 그 고백을 들은 직후 한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그대로 방에 들어갔다. 그 뒤로 그 ‘고백’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다. 며칠간 외모 지적에 대한 횟수가 줄었을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나름대로 부모님은 태도를 정한 거다. 물론 두 분의 선택을 존중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확신한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아무리 고민을 털어놓아도
 "됐어, 너 말고 다 그렇게 살아. 너는 너무 멘탈이 약하고 엄살이 심해.” 라고 말한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우울, 짜증, 좌절, 자괴감. 이 모든 것이 멘탈 약한 나의 문제였다. 모든 것이 엄살이었다.
 

  “제발 가족들한테 걱정 끼치지 마. 다들 힘들어.”

  심지어 민폐다.

  나는 인정받지 못했다.

수전은 어디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를 꿈꿨다.
 
-도리스 레싱著 『19호실로 가다』 수록 
단편 < 19호실로 가다 (p.303) > 발췌, 문예출판사

  3년 전 언니에게 우울증을 알렸을 때, 언니는 울면서 내 손에 전기 손난로를 쥐여줬다. 언니와 나는 각별하다. 부모님, 언니, 나, 남동생까지 각방을 쓰기에는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언니와 나는 자매라는 이유로 10년 동안 같은 방에서 지냈다.

  당시에는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짜증이 나면 짜증이 난 대로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냥 혼자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거나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는 게 전부였다. 잘 웃지도 않았고 말수도 극히 줄었다. 언니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우울증을 앓아 약을 먹는 동생이 홀로 훌쩍일 때 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미안해서 다시 울고 싶어진다.


  그 후로 언니에게는 최대한 감정을 숨긴다. 언니는 지금까지 나를 보살핀다. 습관이 되어버린 듯한데, 본인은 모르는 것 같다. 가끔 내게 “너는 진짜 인생이 너무 힘든 거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태어난 언니가 안타깝다. 우리는 서로가 안타깝다.


  내게는 ‘공간’이 없었기에 감정 억압은 당연했다. 우울하면 눈물부터 난다. 나는 그것이 당황스럽다. 처음엔 언니에게 숨기기 위해 침대에 엎드렸다. 콧물이 베개에 묻어서 딱 한 번 훌쩍였는데 언니는 바로 내게 다가와 이불을 들추고서 “무슨 일이야?”하고 물었다. 나는 목멘 목소리로 “아무 일도 없어.”라고 답했다. 진짜,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냥’ 우울했다.


  그 후로 말하고 싶지 않을 땐 이어폰을 끼거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언니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침대에 엎드리기만 해도 언니는 나를 슬쩍 훑어보았다. 직감적으로 이상하다 싶으면, 일단 이불부터 들췄다.


  눈물이 나면 언니를 피해 밖으로 향했다. 갈 곳이 없었다. 하필 주변 빌라 모두 지상 주차장이어서 이름 모를 차 뒤에 숨어 울어야만 했다. 밤에는 산책길을 걸으며 울었다. 미친 여자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내 방’에서 울 수 없었다. 차 뒤에 마련한 ‘내 방’에서나 겨우 울 수 있었다.



  *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로 검사를 받았다. 우울증이 심해 위험한 수준이라고 했다. “아, 저는 원래 좀 우울한 편이에요.” 아무리 말해 봐도 자꾸만 상담과 병원을 권했다. 병원에 가세요. 호르몬은 약 없이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 지 세 달째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생략) 
그녀는 *존스 부인이고 혼자였다. (생략) 
그녀는 창턱에 몸을 기대고 거리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꼈다. 

 *존스 부인: 수전이 만들어낸 가명
-도리스 레싱著 『19호실로 가다』 수록 

단편 < 19호실로 가다 (p.318) > 발췌, 문예출판사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10년 만에 내게도 방이 생겼다. 복층인데 옥탑이라 천장이 매우 낮다. 스트레칭을 하려면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심지어 너무 더워서 한낮에는 방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아무리 선풍기를 틀어도 잘 때는 아래층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자야 한다.
 
  그래도 나는 내 방이 좋다. 나는 이제 내 방에서 운다. 나는 왜 우울할까, 에 대해 고민한다.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기록하고 다시 고민한다. 끝없는 반복에 좌절한다. 그래서 울었다가 짜증 냈다가 침전한다. 상담받는 것도 가족들은 여전히 모른다. 정신과 약은 침대 밑에 두었다. 유언장은 책장에 꽂혀있다.
 
  약 봉투를 가방 깊숙이 처박아 두거나, 다이어리에 끼워진 유언장이 시도 때도 없이 툭, 떨어지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좋아진 거다. 이전에는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면 지금은 ‘내 방’에서 시원하게 울고불고 혼자 난리를 친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잠이 든다. 일어나면 아직 오후다. 그리고 나는 남은 하루를 보낸다.
 
  수전은 남편이 ‘19호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좌절한다. 모든 것이 똑같은 ‘19호실’에서 더 이상 자유를 느끼지 못한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수전이 바뀐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자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19호실’과 ‘자신(자아)’을 동일시한 것이다. 남편은 ‘19호실’을 알아낸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수전의 내면’이 들통 난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 우울을 숨기고자 노력한다. 약을 숨기고, 상담을 받으러 갈 때면 교수님의 일을 도와주러 간다고 거짓말을 친다. 가짜 교수님을 알아챈 사람은 언니뿐이다. 언니한테 제발 엄마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언니는 그럴 생각도 없었을 텐데 내가 유난이었다.
 
  나는 이제 속지 않는다. 내 감정들이 엄살이고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부모님이 아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뒤에 따라올 시선이 두렵다. 쟤 또 저러네, 걱정되는군, 멘탈이 약해서 문제라니까, 엄살인데 실제라고 믿는 거야, 쟤를 어떡하면 좋지?
 
  엄마가 유언장을 발견할까 봐, 약과 상담의 존재를 알까 봐 무섭다. 가끔은 이미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래서 나도 수전처럼 좌절할까봐 무섭다. 내 방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의심하며 누군가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그 흔적을 찾아 헤맨다. 가끔은 조용히 가족들을 주시한다.


 
  여기까지가 나의 19호실에 대한 고백이다.

  소설 속에서 ‘19호실’의 의미는 다양할 것이다.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일 수도 있고, 비밀을 표출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19호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가진 여러 개의 19호실 중 하나를 고백했을 뿐이다. 아직 고백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19호실은 수없이 많다.
 
  당신도 ‘당신의 19호실’이 있을 것이다.


🙌 팀 소동 강오래

just_keepgoing_@naver.com
저는 가끔 발의 시선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