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율 시
Afiq fatah 사진
입석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
앞에 앉은 사람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한다
그는 잠시 자리를 떠나고
기차는 잠시 멈춰 서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모두 올라타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기차가 어디든 데려갈 것이라는 걸 안다
창밖의 나무들이 흔들린다
산과 마을도 같이 흔들리고
밤이 되면
창밖의 사람들이 하나둘 불을 켠다
아직 살고 있구나
떠나는 사람들은
오래 생각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은 통로 쪽에
잠을 자주 자는 사람은 창가 쪽에 앉는다
무언가 놓고 온 듯
모두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기차는 멈추지 않고
종종 크게 덜컹거리고
잠에서 깰 정도로 무서운 소리를 낸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역무원이 통로를 지나다닌다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어딘가는 가고 있다
나는 일어서서
긴 통로를 지나 사람들을 구경한다
흔들리는 것을 너무 오래 보면 어지러우니
무언가를 꽉 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빼곡하게 들어선 자리를 보자
기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정재율
201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Afiq fatah
말레이시아에서 사진을 찍는다.
집 밖과 도시를 찍으며, 사진은 독학했다.
작가의 말
며칠 전 꿈속에서 튜브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를 떠돈 적이 있었다. 신기한 건 사랑했던 사람과 추억이 쌓인 물건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나를 잡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손에 닿을 듯 결국 놓치게 되는 그런 꿈이었다. 이거야말로 정말 꿈속이구나 생각할 때, 물건들이 하나둘씩 파도에 휩쓸려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잡아보려다 하마터면 물속으로 빠질 뻔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진짜 잔인해.” 꿈속에서 그런 말을 내뱉었다. 내 꿈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억울했다. 그런데도 하늘과 바다, 채도가 다른 두 개의 푸른색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서 경계선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가라앉은 나의 마음이 바닥을 한 번 ‘탁’ 치고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올라온 마음이 어딘가에 걸려 지금의 풍경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요하지만 선명한 그런 풍경, 한참 동안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자주 본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게 아니듯 배웅을 잘했다고 해서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