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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놀이
사과 잘 깎는 애를 좋아해
하지만 사과를 잘 깎는단 말은 우스워하지
복숭아 먹겠냐는 말을 좋아해
하지만 복숭아즙을 팔뚝까지 흘리는 건 웃겨하지
초콜릿 사 오는 애를 좋아해
하지만 술 사 오는 어른은 더 좋아하지
토론할 줄 아는 애를 좋아해
하지만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떠오는 애도 좋아하지
얘는 발등에 뺨을 얹는 애를 좋아해
하지만 걔, 손바닥 아래 따뜻한 뺨도 좋아해
빵처럼 부푸는 미소도 좋아하고
나는 좋아해 제 무릎 아래
가지 마 가지 마 하면서 손을 쥐고 흔드는 응석을 좋아해
그림자들이 식탁 아래서 쑥덕거리는 소리를
분명 들은 것 같다
우리끼리 더 놀고 싶어
낮잠 좀 자 저녁이 오면 놀아줄게
나는 목이 잠겨
먹는 시늉 자는 시늉 걷는 시늉으로 꾸려진
놀이에 대해서 눈을 감고 생각한다
내가 나 아닌 것을 벽에 비춰보고 좋아하던
김복희
1986년생.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가 있다.
Parker Coffman
사진작가.
영화 및 디지털에 관심이 있다.
작가의 말
늘 시를 쓰고 나면, 정작 그 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나는 시작노트에 재능이 없다. 끔찍할 정도로 없다. 그래서 시 쓰면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조금만 써보자면, 사진을 봤다. (생략) 사진을 기억한다. (생략) 디테일을 까먹은 것 같아 다시 본다. (생략) 잊어버리고 있다가 뭔가 쓴다. (생략) 사진을 다시 본다. (생략) 시를 쓴다. (생략) (- >이것의 셀 수 없는 반복) 이 정도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