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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서툰 번역의 기쁨>

같은 해 여름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세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Sea to Spawn
 
                                            Astra Papachristodoulou
 
 

아치형의 관을 따라 미끄러진다
얕은 물의 수면을 끊어내기 위해
미래에서 온 그림자에 둘러싸여서
덜 깬 강어귀 한낮의 햇빛이 일렁이는 선들을 향해 경련한다
 
 

 
얼어붙은
 

                                             Astra Papachristodoulou
 
 
 

거룩함 고리 광선 권운 글라스 난초 네스타 눈보라 다섯 달 대도시
 
도시의 두나 들판 땋은 머리 
라이스스쿱 라일락 라펠라 라프족 로아 
 
마디 만 말레아 매끄러운 맥박 메사 멜리사 무리 물 박막층 베-셀 
 
베수 벨트 볼타 분화구 빚깔 사구 사일린 산들바람 생애 세락 세포
 
소용돌이 솔리스 수은의 수정 신성 신진도시 아리아 아우라 아이콘 
 
얼어붙은 물 에올리아  엘레프데리아 오들로 오르바이 올레베아가
 
우기 울트라 유전 윤곽 이브 이인조 일렁이는 전체의 정신 제일
 
조로조르 조류 조직 졸호프 지구의 지스케이프 지스트림 직조
 
청사진 최초의  카르탈  칼라 쿼드 크레바스 큰가오리 타우 탄성 
 
탈리우스 트리에 틈새 파라미터 펠라고 표류 품종 프리츠 하나 환상 활 흐름


2. 메트로폴리스를 듣고 얼어붙은 물을 읽는 것.
 
  시의 물성은 종이와 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강당에 앉아서 누군가 낭송하는 시를 들으면 자꾸만 단어들은 머물지 못하고 휘발되는 것 같다. 시가 적힌 종이를 쳐다 봐야 하는지,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는지, 낭독자와 맞추어서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책을 읽는 때처럼 고요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Sea to Spawn’과 ‘얼어붙은(Glacial)’은 각각 원통과 투명한 판이라는 대상에 적혀있고 그 시가 쓰인 작품을 촬영하고 낭독하는 영상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공간을 뜻하는 단어인 ‘espace’는 처음 그 단어가 등장할 때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고 한다. 단순히 두 가지 의미를 가진 게 아니라 실제로 두 개념은 서로 혼동되며 쓰였는데,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지금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공교롭게도 두 시에서 종이라는 시를 가두고 있는 공간이 다른 대상으로 전환되고 파괴될 때, 낭독회에서의 혼란처럼 시에서의 시간 역시 왜곡되고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espace’ 속에서 시를 어떤 형태로 번역해나가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Sea to Spawn’는 원통형에 구부러진 글자들로 적혀있어서 어디서 문장이 끝나고 어디서 행갈이가 이루어지는 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느낀 속도와 내가 느낀 의미를 내가 쓰는 시의 방식으로 옮겨 적었다. 입에서 입으로 신화를 옮기던 사람들처럼 불안과 확신 속에서 단어들을 적어나갔다.
 
  가령 ‘일렁이는 선’의 원문은 ‘striated articulations’인데, 가장 익숙한 형태의 시 안에서의 단어로 만들어내고 싶어서 오역했다. 강 하구 수면에 비치는 윤슬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해내서 적은 말이다. 문법적인 부분에서의 각색 또한 있었다. ‘일렁이는 선’에서 일렁임이 선을 수식하고 있는 반면 striated articulations은 선을 띄는, 줄무늬의 의미를 가진 striated가 articulations를 수식한다. ‘선을 띄는 아티큘레이션’ 같은 문장으로는 내가 읽어낸 단어 속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articulations 역시 일렁임과는 거리가 있는 단어다. articulation이라는 말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어는 ‘분절’이다. articulation은 일반적으로 발화되는 표현을 의미하지만 언어학에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분절, 음과 음 사이의 분절을 나타낸다. 이런 마디와 간격을 뜻하는 속성 때문에 articulation은 관절과 굴절이라는 뜻 역시 가지고 있고. 그 모든 articulation이 정오에 비추는 윤슬이, ‘일렁이는 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적었다.
 
  ‘얼어붙은(Glacial)’의 제목은 본문에 존재하는 ‘Liquid glacial’을 ‘얼어붙은 물’로 번역했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 본래의 뜻은 ‘빙하성’에 더 가까우며 ‘얼어붙은’의 경우엔 ‘frozen’이 될 것이다. 또한 제목의 Glacial과 본문에서의 glacial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Liquid glacial은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라 자하 하디드라는 미술 작가의 작품명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베-셀(ves-el) 역시도 사전적 의미 없이 같은 작가의 작품명으로만 존재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추측할 수 있었다.
 
  시 안에 적힌 거룩함은 celeste, 다섯은 cinco, 달은 luna, 물은 aqua다. 알파벳으로 적힌 다양한 언어들이 섞여있는 이 시는 본래 알파벳순으로 적혀있었으나,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나다순으로 다시 적었다. 알파벳순으로 적힌 이 시는 본래 굵은 글씨의 단어와 얇은 글씨의 단어가 반복되는 식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구분했지만, 가나다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는 본래의 굵은 단어는 그대로 굵게, 그렇지 않은 단어는 여전히 얇게 적어두었다.
 
  liquid glacial 역시도 자하 하디드의 작품을 배제하고 직역한다면 액체 상태의 빙하성을 의미할 것이다. Sea to Spawn을 그대로 적어낸 것처럼, glacial을 glacial로, liquid glacial은 리퀴드 글레이셜로 번역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얼어붙은 물과 액체 상태의 얼음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espace 내에서 시간과 공간이 모호해지듯, 이 두 시 내에서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혼동시키고 싶었다.
 
  두 시 모두를 시를 쓰고 번역해내는 방식이 아니라 읽어내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번역에 임했다. ‘서툰 번역의 기쁨’이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제멋대로 하는 번역이나 무책임한 번역의 기쁨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하는 도중에 자신 없는 점들이 많았고 이게 괜찮을까 싶은 지점 역시 있었지만 두 번역을 끝마쳤을 때, 나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번역을 마친 ‘얼어붙은’을 읽으면서 ‘Glacial’의 영상을 보았다. 시인이 읽는 속도에 맞춰서 하나씩 단어를 읽어보았다. ‘Aura’는 거룩함. ‘Aqua’는 고리, ‘Aria’는 광선, ‘beam’은 권운. ‘Metropolis’는 얼어붙은 물. 이 글을 쓰는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에어컨이 고장 나는 일이 있었다. 서울은 너무나도 여름이고 땀과 갈증만이 가득한데 시를 읽는 동안에는 얼어붙은 대도시가 있었다.
 
  런던에 있을 때 시인을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다른 시인들의 낭독회였고 나는 아무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런던에 왔을 때 자신도 그랬었다고, 그녀가 나한테 해준 말이 기억난다. 비가 엄청 많이 내리던 겨울이었고 날씨는 그다지 춥지 않았었는데 그해 서울로 돌아오던 날 공항버스 바깥으로 눈이 내렸다.
 
  같은 해 여름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세 번의 여름이 지나갔다.
 
Sea to Spawn : https://www.youtube.com/watch?v=AdJzL2hbm6w&feature=emb_logo
Glacial : https://www.youtube.com/watch?v=pDloG6jbCOQ&t=101s


isaiah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재학 중.
베를린 < SAND Jourral >에서 데뷔.
시를 쓰고 옷을 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