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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iah <서툰 번역의 기쁨>

4. 유머와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엘비스는 집을 떠났다, James Tate
 


너구리 한 마리가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내려오지를 않았다. 나는 돌멩이를 던졌고 너구리는 그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어” 결국 나는 샷건을 챙겨오기로 마음먹었다. 차고에서 사다리를 꺼내와 성큼성큼 올라갔다. 영점을 맞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었다. 총알은 빗나갔고 대신에 지붕 위엔 구멍이 뚫려버렸다. 옆집에 사는 소년 대니가 집 앞에서 뛰쳐나와 소리를 질렀다 “쏘지 마세요! 그건 제가 기르는 집너구리에요!” 나는 사다리를 접고 못미덥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 좋아, 너가 저 너구리를 데려갈 수 있다면 믿도록 하지.” 그는 사다리의 난간 위에 서더니 말했다. “이리와 빌리” 그러자 놀랍게도 너구리는 지붕에서 내려와 그의 품에 안긴 채 대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샷건과 함께 내 집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다가 레포트를 작성했다. 세 시간 정도가 지나 나는 일을 마쳤고, 낮잠을 자기로 했다. 거실로 내려와 소파 위에 누웠다. 깨어나니 무릎 위에 너구리가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다가 곧 좋은 생각이 나 곧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삼십분 가량을 같이 누워있었고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너구리를 들고 현관으로 나왔다. 옆집에 사는 대니였다. “제 너구리를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그가 말했다. “나도 이게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어. 정말로.” 나는 말했다. “아무튼, 이 친구 이름은 뭐니?” “엘비스에요” 그의 동물을 움켜쥐면서 그는 대답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온종일 마당을 손질하느라 지쳐있었다. 일찍 잠에 들었고 내가 일어날 즈음에 품 안에는 엘비스가 있었다. 그건 몹시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었고 나는 그에게 입맞추었다. 그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 아침식사로 시리얼과 우유를 준비했다. 그는 식사를 좋아했다. 내가 외출한 뒤에도 엘비스는 온종일 나를 쫓아다녔다. 그날 밤에도 그는 함께 머물렀다. 다음날 밤이 되자 그는 앞으로도 계속 지낼 세입자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함께 일과를 보내고 식사를 했다. 우리는 같이 잠들었다. 어느 날 떨어진 낙엽들을 쓸고 있을 때 나는 마당에 있는 밥과 수잔을 만났다. 데니스의 부모들이었다.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나는 물었다 “대니는 요즘 어때요” “이미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대니는 작년 여름에 죽었어요. 소아마비로.” 밥이 대답했다. “정말 죄송해요. 그가 무척 그리우시겠어요.” 나는 말했다. 낙엽 쓰는 일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서류작업을 하고 낮잠을 자다가 저녁을 먹었다.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그곳에 엘비스는 없었다. 나는 모든 곳을 찾아봤지만 엘비스는 없었다.
 
(원문 : https://www.theparisreview.org/poetry/7385/elvis-has-left-the-house-james-tate  전문은 구독 후 읽을 수 있다.)


한 잔의 두더지, Matt Howard


당신에게 줄 선물을 위해 온 도시를 샅샅이 뒤졌어.
모범택시 기사들의 지식과 정보들을 빌려서 -
병 속은 꽉 차 무거우니까 조심해서 들고 가야 해
 
그 속에 얼마만큼이 들어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가득 차있을 뿐이었으니까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진정한 마음처럼
 
유리병은 잠잠하지만 사나운 표정들로 뭉개져 있었고
그 어두운 방의 미로에서 분홍색 주둥이만이 선명히 보였다
여길 봐, 이 녀석은 여전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어
 
수십 년 동안 갈색 병 속에서 꿈틀거리던 벨벳
어느 누군가 빈틈을 만들어내면
다른 여럿이 그 속을 파고들어 채우지.
 
그러니 내 마음이 담긴 이 두더지들을 받아주오. 내 사랑
조심히 안아들고, 서늘한 곳에 간직해주게
무거운 땅을 헤엄치던 손바닥 하나하나를 아껴주면서
 

(원문 : https://www.therialto.co.uk/pages/2018/08/28/a-two-poem-blog/)




4. 유머와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주 루이스 글릭의 시를 번역하면서 생각이 들었다. 이 연재물을 출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은 번역과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툰 번역의 기쁨’이 아닌 ‘번역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모든 글을 수정해야할 것이다. 첫 번째 번역과 마지막 번역 사이의 인과성을 만들기 위해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한 번도 택배로 어떤 물건을 보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기껏해야 대학 지원에 필요한 원서나 투고해야 할 작품만을 간간이 우체국에서 보내보았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주려고 산 선물도 끝끝내 보내지 않다가 십 개월가량이 지나서야 제주도에 가서 전해줄 수 있었다. 친구는 불문과 동기였는데 제대로 인사하기도 전에 대학축제에서 먼저 친해졌다. 어느 날 집 근처를 걷다가 카페 겸 서점에 진열된 바르트 책을 보았고, 친구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바르트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바르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최근에 바르트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서 같은 카페를 방문했다. 서툰 번역의 기쁨을 시작으로 쓰고 싶은 다양한 글들이 떠올랐고, 산문이라는 낯선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누구를 참조해야 할까? 라는 고민에 떠오르는 건 바르트밖에 없었다. 나는 작가라는 나의 정체성과 그에 기반한 내 텍스트, 하나의 아카이브처럼 펼쳐지는 시세계가 좋고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의 바르트는 그런 ‘작가인 나’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이해했고 이해하고 있는 바르트라는 사람의 인상이다.)
 
  하지만 나는 바르트를 사랑하는 내 친구가 보는 바르트의 지점을 좋아했다. 불어를 공부할 때 본 아델 에넬의 인터뷰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를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녀는 바르트의 모든 것. 순수한 성찰과 열정 사이에 있는 모습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바르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르트의 포즈를 좋아했고 철학과 사상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패션과 글쓰기에 관해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성실함과 열정을 존경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카페에 내가 원하던 바르트의 책은 진열되어있지 않았고 대신에 나는 그가 쓴 서간집을 사왔다. 그리고 다른 반가운 작가 한 명을 발견하고, 다음에 방문할 때 그 책을 사야지. 마음먹었다(나는 책을 구매하고 낙서투성이로 만들면서 읽다가 다음 책을 산 뒤 언젠가 그 책을 선물한다). 니콜라이 고골리였다.
 
  영국 시인과 미국 시인의 시를 번역해놓고 프랑스 철학가와 러시아 소설가의 이름을 한 페이지 동안 늘어놓았다. 유머와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제임스 테이트는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를 읽다가 처음 알게 된 시인이었다. 나는 이 시인의 시가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연체를 하면서 읽고 있었고, 한소리 기획자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도 가방 속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요즘 읽고 있는 시집이라며 보여줬었다.

  ‘서툰 번역의 기쁨’을 처음 구상할 때도 먼저 떠오른 이름이었지만 살아있는 작가가 아니기에 굉장히 동시대적인 시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외국시인이라는 취지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가 싶어 번역을 미뤄왔었다. 그러다 영국의 잡지 ‘The Rialto’에서 맷 하워드의 시를 읽게 되었고 두 명의 시인의 시를 같이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번역의 미묘함과 바뀌는 의미에 대해 연달아 되풀이하는 대신에 유머를 가진 시를 편안한 마음으로 소개하면서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두 시에서의 유머는 기괴함과 불편함을 동반한다. 대니과 엘비스가 같이 사라지는 부분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의 죽음을 태연히 말하는 부모와 나의 태도는 어딘가 불쾌하다. 한 잔의 두더지에서 꿈틀거리는 두더지들로 꽉 차있는 병의 이미지는 징그럽고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그의 소설 제목)’에서 나왔다”고 했다. 고골리의 소설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미신적이고 비인과적인 사건들로 인해 진행된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동시에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을 준다. 소재뿐만이 아니라 문장에서도 그렇다. 자주 그는 인과관계 없는 두 문장을 합치는 것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우리의 근원이 합리적이고 질서적인 논리로 인한 세계가 아닌 뒤틀려있고 무질서한 어떤 기괴함 속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는 고골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로부터 개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괴한 유머는 사실 굉장히 쉬운 방법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읽기 쉽고 흥미를 느낄만한 것으로 이목을 끌고 불편한 의미나 메시지를 숨겨놓는 것.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성을 담고 있는 예술을(그것이 현대로 올수록)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오히려 유머와 동반되는 불쾌함의 필연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가 인식하는 안정감은 가장 익숙한 형태로 놓인 이미지들의 연속이고, 실제 현실이 진행되는 방식은 비인과적인 사건들의 연속체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그리고 그 무질서함을 엿보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더 집중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롤랑 바르트와 고골을 만난 서점에서 눈여겨본 세 번째 책과 같았다. 상당한 위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반년째 나는 성수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10월 중순이면 일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한 달을 지낼 생각을 하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건물의 다른 방을 구해서 책을 읽고 운동도 하고 지내면서 한 달을 쉬다 올 생각이다. 어떤 편함을 간직하며 글을 쓰고 싶었고 동시에 어떤 불편한 이야기들을 떠들고 싶었다. 위당관에서 커피를 시키고 담배를 피우며 공강 시간을 보내는 학부생처럼.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나는 얘기할 수 없지만, 진정한 우정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매우 이상한 순간이었다.
 
 

  * 두 시 모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전에 그래왔듯이 번역을 하며 문장 각각에서 느껴지는 의미의 변화와 확장에 대해서는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다만 ‘한 잔의 두더지’의 원제인 ‘A JAR OF MOLES’의 Jar은 잼 같은 것을 담는 뚱뚱한 유리병을 뜻하는데, 보다 비슷한 의미의 ‘병’이 아닌 ‘한 잔’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주관적인 오역이었다. ‘한 잔의 두더지’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jar과 잔의 발음이 비슷해서였다.



Isaiah
‌ 
‌베를린 < SAND jourral >에서 데뷔
‌시를 쓰고 옷을 입습니다.


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 ART MUST GO ON > 선정작
주최주관 : 한소리(아는사람)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