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규 일상비평
※주의: 이 글은 노씨 성을 가진 전국의 모든 남성들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노씨 성을 가진 남성과 발기부전은 무관하다는 것을 알립니다.
N번방 사건을 볼 때면 발기가 안 되던 구질한 예전 애인이 떠오른다. 그는 언제부턴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에 대해 자주 묻곤 했다. 난 그때마다 당시 나의 복장상태, 이를 테면 수면바지와 면 티셔츠, 츄리닝이나 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 주곤 했다. 주로 내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의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내게 묻는 물음의 강도가 점점 세지기 시작했다.
‘수면바지 입고 있어? 그러면 그 안에 뭐 입고 있어? 당연히 속옷 입고 있겠지? 속옷 색깔은 무슨 색깔이야? 어떤 속옷 입고 있는지 궁금해. 속옷 사진 찍어 보내줘. 사실은 속옷 안에 있는 게 더 궁금해. 사진 찍어 보내줘.’
본인 딴에는 연인이니까 할 수 있는 귀여운 섹드립이라고 여겼나보다. 나도 처음엔 농담인가보다 하고 웃어넘겼다. 나도 장난처럼, 아무것도 안 입은 채 벌렁 드러누워 있는 적나라한 강아지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특히 그가 술이 취했을 때 내게 저런 요구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간에, 난 그가 요구하는 인증 사진을 절대 보내주지 않았다. 아무리 연인사이라고 해도 선을 넘는 섹드립 쌉소리를 계속 들어주는 건 한계가 있다. 어느 날의 늦은 밤, 술을 먹고 메시지로 속옷셀카인증샷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그에게 난 정색을 하고 물었다.
‘왜 자꾸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궁금해서. 내가 지금 당장 못 보니까.’/ ‘나 같으면 궁금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도 안 웃겨요.’/ ‘알겠어. 미안해. 다음부턴 그런 말 안 할게.’
난 그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미안하다고 한 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사랑하는 애인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묻는 일이라든지, 속옷 사진뿐만 아니라 알몸 사진을 요구하는 자신의 행동을 애정의 연장선상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요구를 하는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후 그는 내게 다시는 누드 셀카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뭐 입고 있어?’를 집요하게 묻는 일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끔 이런 행동을 하기도 했다. 섹스가 끝나고 누워 있는 나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우리 자기 몸 예쁘다. 내 맘 속에 찰칵!”이라는 말과 함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손으로 사진을 찍는 시늉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누드셀카’를 요구하던 강도가 심해지는 지점에서부터 그의 발기도 잘 되지 않기 시작했다. 성격도 이상해졌다. 덩치에 비해 소중이(?)의 크기도 작았고, 내게 그토록 누드 셀카를 요구하는 열정에 비해 섹스도 썩 잘 하는 편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한 두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주 그랬다. 예상치 못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난감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도 엄지손톱 미더덕 맥립스틱 크기만큼의 작디작은 그의 소중이가 도통 고개를 들지 않는 상황에서, 나도 섣불리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의 가장 큰 자존심과도 결부되는 문제였기에, 그에게 함부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나는 30대 초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적은 나이는 아니더라도, 발기부전을 고민할 만큼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 발기가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 때마다 그는 젊은 시절보다 무려 2배나 살이 찐 자신의 저주받은 몸매와, 운동할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바쁜 직장인의 비애에 처한 자신을 자주 한탄했다. 나중엔 듣는 사람마저 질릴 정도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아는 의사친구라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력영양제까지 챙겨 먹었다. 효과는 과연 약을 먹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아주전혀절대1도 없었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는 내게 약을 먹고 난 후의 소감을 묻기까지 했다. 그에게 “어땠어? 좋았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난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노오력이라고 하는 건 참으로 가상하나, 꼭 저렇게까지 확인받고 싶을까. 애쓴다. 엄지손톱 미더덕 좇만한 새끼. 애초부터 섹스도 잘 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약의 효과는 무슨 개뿔 뜯어먹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라는 잔인한 마음의 소리를 숨겼다는 게 함정이지만.
만약 그 자리에서 마음의 소리가 필터링 없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진심으로 별로였다는 솔직한 대답을 한다면, 위험한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밤, 아무리 연인사이라 하더라도 남녀가 단둘이 있는 은밀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특히 발기불능과 같은 남자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에 관련했을 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섹스를 함에 있어서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나라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씁쓸했다. 발기부전한 밤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나날들이 계속되는 어느 날이었다. 사랑을 나누기 전, 그가 갑자기 일어나 가방을 뒤적거리며 마법의 정력영양제를 꺼내 입안에 털어 넣는 참으로 안쓰러운 뒷모습을 보았다. 난 그때부터 그에 대한 정나미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헤어졌다.
‘난 그냥 너가 뭐 입고 있는지 궁금해서.’
난 그가 내게 했던 저 말이 종종 떠오른다. 도대체 왜 궁금한 걸까. 뭐가 궁금해서 애인의 속옷 셀카 인증샷 요구까지 하는 걸까. N번방 그들도 뭐가 궁금해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사진과 동영상 인증요구까지 하는 걸까.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들도 아마 그와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냥 처음에는 궁금해서, 호기심에서, 재미로 시작한 거였어요.’와 같은 말도 안 되고, 무책임하고, 어이 상실한 대답을. 많게는 몇 백만원어치의 가입비를 지불하고, 몇 단계 수준의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거쳐 N번방 사이트의 회원이 되는 수고로움을 겪는 일을 단지 실수였다고 말하는 그들처럼. 그들이 지닌 소름끼치는 호기심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발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고 나서부터 누드 인증샷을 요구하던 그처럼, 그들의 말 못할 열등감이나 욕구불만이 일정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
몇 년 전 중학생들과 논술 수업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모르는 남자로부터 SNS 메시지를 받았다. 남자는 여학생에게 나이와 성별, 사는 곳, 학교를 묻더니, 갑자기 5만원짜리 문화상품권 쿠폰을 보내줬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예상치도 못한 액수의 문화상품권을 선뜻 선물로 건네준 상황에 여학생은 얼떨떨했다. 익명의 남성은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이것보다 더 비싼 문화상품권 쿠폰도 줄 수 있으니,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안되겠느냐고. 여학생은 그 부탁이 뭐냐고 묻자, 너의 특정 신체부위 중 한 곳을 사진으로 찍어보내달라는 답문이 왔다. 어차피 너의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괜찮지 않냐는 안심의 말과 함께. 여학생이 어이없어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럼 당신 것 먼저 보여주세요!”라고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인 남성의 성기 사진이 전송되었다. “너무 놀라고 징그러워서 그 남자 SNS계정 차단하고, 메시지도 지웠어요!”라고 말하는 여학생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모든 게 중학교 쉬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며, 2020년 N번방 사건이 뉴스에 보도가 나기 한참 전의 일이다.
알몸 사진을 보내달라는 그의 집요함에, 나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럼 당신 몸 사진부터 먼저 보내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은 답문을 보냈다. ‘그럼 뭐를 보여줘야 하지?ㅋㅋㅋ’ 계속되는 인증샷 요구에 난 젖꼭지가 훤히 보인 채 발라당 드러누워 있는 귀여운 강아지 사진과 함께, 웃음 이모티콘을 보냈다. 내게 보낸 메시지를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은 답문을 보냈다. ‘웃지 말고 진짜로 보여줘야지.’ 기본 상식을 지닌 여성이라면, 그가 내게 보낸 저 짧은 문장을 보더라도 기분 나쁜 쎄함을 감지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연인이라면, ‘적어도 저딴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는 미래를 함께 하면 안되겠구나.’라는 매우 분명한 확신도 들 것이다.
“뭐 하고 있어?”를 묻는 일과, “뭐 입고 있어?”를 묻는 일. 연인 사이에서 “뭐 하고 있어?”를 묻는 일은, 그날의 안부와 함께, 평소에 연인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 애정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연인에게 “뭐 입고 있어?”를 묻는 일은 다르다. 연인이 평소에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 애정보다는, 성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의도가 다분하다. 나를 성적대상화한다는 점. 나의 안부를 묻는 일보다는, 나를 자신의 성적판타지를 충족하는 용도로 여기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불쾌했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N번방 사건이 뉴스에 보도가 되었는데, N번방 사건을 볼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아무리 사랑했던 연인이라 하더라도, N번방 회원 가해자들과 그가 지닌 호기심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건강하지 못한 호기심, 올바르지 못한 성인지 감수성, 원인 모를 자격지심(이라고는 하지만 발기 문제에서 오는 게 거의 99.9%라고 짐작해본다). 이 세 가지 요소의 적절한 조합이 30대 중반의 구질한 한남변태의 전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득 기억나는 그와의 구질한 추억과, 심상치 않았던 그의 언행을 떠올려본다. 우연히 ‘귓청소방’, ‘키스방’, ‘전화방’이라는 간판이 걸려진 건물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내게 “귓청소방은 정말 귓청소만 해주는 곳일까? 전화방은 정말 전화만 하고, 키스방은 정말 키스만 하는 곳일까? 정말 궁금하다. 저런 데 가는 남자들도 있겠지? 분명 찌질한 사람일 거야. 넌 호빠 같은 데 가본 적 있어? 진짜 한 번도 안 가본 거야?”라고 말했다. 근데 그는 모른다. 저 말을 내게 ‘1번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런 곳을 궁금해할 수는 있어도, 저런 말을 그것도 연인 앞에서 꺼내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에서, 그런 곳을 궁금해하는 것 또한 정상은 아니다. 똑똑한 여자에 대한 이상한 자격지심도 있었다. “문단모임 나가면 너 노리는 남자들 없어? 너한테 작업 거는 사람들 정말 없어? 내가 남자라면 너 가만 안 둘 것 같은데. 우리 전교수님, 전박사님, 미녀작가님, 전작가님 최고다! 어린 나이에 벌써 박사까지 하고 작가도 되고 대단하다! 미녀박사도 모자라 미녀교수까지 되었네. 급이 달라서 보통 남자들은 쳐다보기도 힘들겠어.” 칭찬도, 비아냥도 아닌 애매한 발언이었고,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불쾌했다. 나아가 저 말을 하는 그가 진심으로 못나보였다.
‘만약 저런 발언을 여자가 하게 된다면, 여자에게 저런 말을 듣는 남자는 어떤 기분이 들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던 게, 여자는 남자에게 절대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여자가 미남작가, 미남교수, 미남박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니와, 남자라면 ‘문단모임 나가면 너 노리는 여자들 없어? 내가 여자라면 가만 안 놔둘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는다는 것을. 무심코 던지는 일상의 대화나 행동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 드러나기도 한다. ‘여자는 다정한 맛이 있어야지.’ ‘결혼하면 애는 당연히 낳아야지.’라고 말하던 그의 발언이나, N년째 숏컷 스타일을 유지하는 나를 보며 왜 자꾸 머리를 짧게 자르냐며 아쉬워하는 점에서 느껴지는, 그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가부장적인 가치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언젠가 TV에 나온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를 보며, “저 여자도 이제 많이 늙었네.”라고 작게 탄식한 적이 있다. 난 그의 저 발언이, 나의 숏컷 스타일을 지적하는 것보다도 더 어이없었다. 본인은 걸핏하면 늙었다고 골골대며 많지도 않은 나이에 발기도 안 되는 주제에, 감히 우리의 영원한 퓨리오사이자, 불멸의 삶을 살며 악당들을 무찌르는 앤디, M16 최고요원 로레인이기도 한 샤를리즈 테론을 욕보이다니.
그는 헤어지고 난 후에도 찌질함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잊을 만하면 꾸준히, 늦은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거나, 새벽감성 충만한 메시지를 보냈다. ‘전작가님(혹은 미녀작가님) 뭐하십니까?/ 미안해. 내가 말해놓고도 찌질하네ㅋㅋㅋ/ 자니?/안녕/딸꾹/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너그럽게 이해해주거나 내가 뭐를 잘못한 건지 말해줘.’ 참으로 우스꽝스런 가관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날이 다가왔다. 어느 늦은 밤, 그는 내게 ‘전작가님 뭐하십니까’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을 보냈다. ‘작가님’이라는 극존칭도 맘에 들지 않았거니와, 살인적인 마감으로 정신을 최고조로 가다듬으며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고요한 시간에 보낸 저딴 문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씨발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라는 깊은 빡침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너한테 ‘씨발’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하찮은 존재냐고 화를 냈다. 여태까지 내게 했던 자신의 무례한 언행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순간, 나는 민간인들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않았던, 어디서 뭘 보고 저렇게 배워먹은 씨발새끼들 앞에서만 꺼내던, 비평가의 조낸 신랄한 칼날이 고개를 들었다. 난 그에게, 그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분명한 언어로, 조근조근 즈려밟으며, 당신의 모든 행동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지, 역겹고, 더럽고, 소름끼친다는 말을 직접 해가며 매우 잔인한 팩트폭격을 가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존심은 지켜줘야겠기에 발기얘기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혹시 그가 내 집으로 쫓아와 보복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마침 이사를 하고 난 후라서 안심했다. 그는 내 말에 어느 정도 충격을 먹은 것 같았다. 이후 그는 더 이상 내게 장난스런 문자는 보내지는 않았지만,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영규야 화이팅. 그냥 난 널 응원한다.’ 저 문자를 마지막으로 그에게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몸서리쳐질 만큼 찌질했다. 연인에 대한 추억을 드디어 정리했고, 나아가 연인을 향한 응원의 마음까지 보내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참으로 아련 돋는 그의 문장이었다. 마지막까지도 맨스플레인을 하다니. 찌질한 이의 뒷모습은 역시나 찌질했다.
내 핸드폰 연락처 목록에서 그의 이름은 ‘노발기’로 저장되어 있다. 그의 성이 ‘노’ 씨이기도 하거니와, ‘발기’도 안 되기에 만든 별명이다. 노발기와의 연애 이후 나는 ‘노씨는 정말 노씨라서 발기도 안 될까?’라는, 말도 안 되는 일반화의 오류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겪은 누드 셀카에 환장한 노발기 애인에 대한 경험담을 ‘누드셀카를 요구하던 전 애인의 씨발스런 심리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P.S. 이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N에게
당신이 이 글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도 ‘그냥’ 궁금해서 내 속옷 인증 셀카를 요구하던 당신의 호기심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 같은 몹쓸 호기심 때문에 죽어나가는 어린 여성들도 있는데 말이지요. 잔인하지만 N번방 가해자들과, 당신의 변태스런 호기심은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부디 N번방 가해자들처럼 사회의 악으로 남지 말아주세요. 연인의 알몸사진을 요구하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애인의 누드 셀카사진이나, 애인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지만이 섹스가 가능하다면 당신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다른 치료도 받아야 할 것이지만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를 정도로 말 같지도 않은 말이나 하고,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는 찌질한 행동과 자격지심. 남들이 보기에도 참으로 못나 보이는 본인의 행동이 도대체, 왜,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애를 써도 고개를 들지 않는 미더덕 엄지손톱 맥립스틱만한 당신의 작디작은 소중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요. 평생 여자 속옷 색깔이나 궁금해하며 발기없이 유병장수하며 오래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씨발.
전영규
문학평론을 씁니다.
평론과 에세이는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인생에서 한 번쯤은 존재하는
옛 연인의 몸서리쳐지는 흑역사를 떠올리며
그들의 구질함을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 ART MUST GO ON > 선정작
주최주관 : 한소리(아는사람)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