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면 내가 덮은 이불이 따뜻하다는 것이 슬프다.
내가 자주 가던 아이스크림 상점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줄지어 서 있고, 푸른 하늘에서 새 떼들은 배열을 만들어 날아가는 걸 반복하는데
동네 주민들은 한동안 나의 우울한 표정을 의뭉스러워한다.
내가 처음 검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온 날처럼, 내 곁에서 검은 고양이가 차가워진 것을 발견한 아침은 믿기지 않는 날이었어.
내가 데리고 온 검은 고양이를 두고
가족들은 한마디씩 해야 했지.
아빠는 그 까만 것이 검은 실뭉치처럼 작다고
엄마는 벌써 털이 많이 빠질까 봐 걱정된다고
누나는 두 손을 뻗어 “이리 와 이리 와” 고양이를 불렀고
검은 고양이는 우리가 모인 식탁 아래에 자주 웅크려 있었네, 드라마를 함께 볼 때면 소파 바깥으로 뻗은 다리 위로 사푼사푼 걸어 다니고, 다과를 나눠 먹고 거실에서 헤어질 때면
검은 고양이를 누구의 방에 데려가야 할지 우리는 작은 다툼을 해야만 했지.
아빠는 검은 고양이가 불룩한 배 위에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고
엄마는 검은 고양이가 아침에 깨자마자 불러주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누나는 검은 고양이가 침대에 수놓아진 나비 무늬를 좋아한다고
그러나 가족들은 이제 나에게 검은 고양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간 허전한 식탁에서 나는 밥을 깨작깨작 먹고, 소파에서는 TV 채널을 돌려도 집중할만한 프로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알았다, 너무 검어진 고양이가 여전히 내 표정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불을 끄면 내가 덮은 이불이 따뜻하다는 것이 슬프다.
추워진 날이면 검은 고양이와 함께 먹었던
우유를 데워 마시면서 겨울이 오는 창밖을 보곤 한다. 엄마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내 정신 좀 봐”
가끔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고양이 사료가 들어 있다.
강우근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안 하기가 어렵다. 만약에 인사를 안 하고 스쳐 지나가더라도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가 아는 사람인 것을 티 낼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는 학원 근처에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 검은 고양이가 햇볕에 몸을 말리는 모습을 볼 때면 그 평화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학원으로 들어간다. 검은 고양이가 안 보이는 날보다, 내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검은 고양이가 사라진 날이 더 슬프다.
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얼마나 연결이 되어 있는 걸까. 안다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우연을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카페 옆 좌석에 앉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고양이를 좋아했거나,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1년 코로나19 예술지원 < ART MUST GO ON > 선정작
주최주관 : 한소리(아는사람)
후원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