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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의 이름은」

오은경,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이 있다.


  땅굴을 파는 말티즈처럼
  하양이 흑색으로 물들 때
  ……
  나뭇잎이 휘날린다 눈앞에서
  나뭇잎은 낙엽이고 낙엽은 단풍나무에서 떨어져 내린다 낙엽이 쌓이려면 계절은 가을이어야 하고
  장소는 공터쯤으로 예상된다 나는 촉촉하고 말랑한 코를 가진 강아지가
  하얗다는 것 말곤 아는 게 없다 내 앞의 말티즈는 비숑이나 스피츠일 수도 심지어 개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전에도 강아지로부터 기분 좋은 습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 상황을 아울러 개의 습격이라 명명하겠다 멍멍! 방금 전 외침은 현실이 아니라 내 마음 속 소리이다 나는 내면에 귀를 기울인다
  차가운 코…… 얼굴에 닿는다 주둥이가
  뾰족하다 개의 눈은 두 개
  입은 턱 끝에 위치해 있다 거리가 멀면 뭐든 검고 깊어지기 마련이다 음영이 생긴다
  그림자를 통해 사물과 사람의 정체를 알아맞힐 수도 있다 그림자를 실체라 오해할 수도 있다 그림자와 실체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우열을 가릴 순 없다 나는 빛과 어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작가의 말


  웹진 < 아는사람 >에게 500자에 맞추어

산문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작가의 말인데 시와는 별개로
글쓴이가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적으면 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글은 전에도 몇 번 써봤으므로……. 
그러나 〈아는사람 > 발표는 처음이고
나는 무엇보다 어제 썼던 산문을 날려
(500자가 한참 넘는 분량을 써서 폐기하기로 했다) 
산문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폐기한 산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아지의 이름은』이라는

동명의 시를 전에도 발표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21년 6월) 약 6개월 전쯤의 일이다.
지면 발표가 아니었고 온라인을 통해 시를 낭독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돌아갔으며 
같은 시를 여러 번 다시 낭독해야 해서 고생한 탓인지 
동명의 시에 애착이 간다.”
 
모두 사실관계인데
다시 봐도 수정할 부분이 없는 것은 
저 내용이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시의 제목과 발표할 시에 해당하며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의 제목을 다르게 고칠 수 있고 
아니면 발표하겠다고
마음먹은 시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