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양, 인어를 믿는 사람. 시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가 있다.
인어와 실험을 공모했다
집이 좁았기에 그들이
나를 맡았다
그들이 제공한 수조는
하늘을 반영하지 않는
유일한 물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람임을
잊으려 하였고
하루는 성공,
그다음 실패했다
어디까지나
나는 하나였다
물고기나 플랑크톤은
나란함을 믿지 않았다
수열을 잊은 물방울 내 것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인어는 호기심으로 나를 찾았다 분홍 머리카락이 무늬처럼 수조를 채웠다
나는 기대했다 누가 그러지 않을까
그의 손가락이 목숨을 가리켰다
반 정도의 심해가 나를 열고 나갔다
이대로는 멀리 흐를 가능성
눈동자처럼
아무것도 담지 않을 때 수조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꺼이 여길 잘라 단면도를 그리게 하겠어’
나는 물방울 같은 비밀을 만들었다 내가 그것을 짓고 있다는 하나만 비밀이 아니었다
‘끝이야, 너에 대해 다 알았어’
지느러미로 단조로운 나의 생을 톡 터뜨렸을 때
진주 한 알 남기지 않은 실험이 입을 닫고 있었다
작가의 말
서늘하고 맑은 목소리로
합창을 이루기로 했다
만나기로 약속한 토요일
나는 숨었다
‘미안해, 도저히 못해
다시는 너와 대화할 일이 없기를’
갈기갈기 찢은 편지…….
날카로운 쇠를 둥글게 다듬은 굴 속이다 사는 한 나오지 않을 셈으로 나는 여기에 들어왔다 기침과 에코가 새로운 친구다
친구들은 간혹 나의 귓가에
수줍은 음성을 흘려 넣는다
‘이 곳 말이지
네가 들어오기 전엔
칼이었다구’
단지 숨어든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은신이란 정지를 상속 받지 못한
그림자를 좇는 일이므로
별 없이 나는 움직인다
칼을 가졌다면 한 사람도 다치지 않게
밤이 잘린다 반짝 하고 찾아온
오래된 친구의 노래를 듣는다
나는 맞으러 나가지 않고
여기에 답가를 적는다
‘다시 맑은 날에는
반드시 너를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