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드라마 <스위트홈>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담겨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벗어나고 싶은 대상은 학교일수도, 회사일수도, 사람들일수도 있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행복했던 회사가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조차 괴롭게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바로 전날까지는 애정하던 대상일지라도 한번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면 금방 애정은 식어버리고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마음속에 각자가 품은,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을 상상의 영역에만 남겨둔 채, 현실의 압박 속에서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회사 건물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에게 갑작스레 사고가 난다거나 하는)이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이 일어나버린 곳에서는 어떨까? 이를테면, 자고 일어났더니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재난 상황 같은 것 말이다. 그게 바로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 스위트홈 > 속 이야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 스위트홈 >
재개발이 예정된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한 소년이 홀로 이사를 온다. 단정치 못한 옷차림과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한 그 소년이 바로 스위트홈의 주인공 차현수(송강 분)이다. 학교 폭력으로 인해 방에만 틀어박혀 나가지도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는데, 외면하면서나마 자신을 챙겨주던 가족들마저 사고로 모두 잃어버렸다. 가족들이 남기고 간 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 전부다. 원래 살던 집에서부터도 쫓겨나듯 나와 낡은 그린홈으로 이사했다. 희망이 없어서 욕망마저 사라진 소년에게 삶은 버겁기만 하다. 죽음을 결심한 현수가 옥상으로 올라가 떨어지려던 중에 발레를 연습 중인 은유(고민시 분)를 보게 된다. 삶을 끝내기 위해 올라온 아파트 옥상에서 현수는 자신과는 다르게 꿈을 좇는 은유에 관심이 가게 된다. 현수에게는 그저 죽음을 위한 장소였던 옥상이 꿈을 가진 은유의 무대로 변모하면서 인생의 끝만을 바라보던 현수에게 다른 세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 앞에서 돌아온 현수에게 닥친 것은 더욱 절망적인 재난의 상황이다.
현수뿐만 아니라 < 스위트홈 >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현실의 사람들처럼 모두 결핍을 가지고 있다. 결핍은 욕망으로 발현되지만, 모든 욕망이 완벽히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괴물의 모습으로 등장해 배출된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1411호의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괴물은 사람일 때 참아왔던 식욕으로 인해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먹으려고 하는 식탐 괴물이 되었고, 입에 달린 기다란 촉수로 흡혈을 하는 괴물은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욕망이 반영된 듯하다.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괴물이 되기 전, 이른바 ‘괴물화 과정’을 거친다. 외면적으로는 코피를 흘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내면에서는 상상 속의 내가 나타나 내가 사는 현실을 부정하며 욕망해왔던 유토피아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 유혹에 못 이겨 자신의 내면(꿈)에서 욕망을 이룬 순간, 외면은 괴물로 변질하여 버린다. 사람들이 품고 있는 욕망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괴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문으로 통하는 길에는 출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 스위트홈 > 속의 현대인들은 그 욕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여기에서 현수가 괴물이 된 다른 인물들과 다른 점이 드러난다.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꿈속에서 깨닫고, 그것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괴물이 되어도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특수 감염인’이 되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내면의 유토피아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이야기일까. 현수가 괴물이 되기 이전의 목표는 ‘인간’으로서 죽는 것이었다. 모두가 변해가는 세상에서 자신도 괴물로 변하기 전에 자살을 결심한 순간, 괴물에게 공격당할 뻔한 어린아이들을 보고 그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인간적’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현수의 욕망은 ‘인간적’인 욕망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욕망하는 사람들과 달리 현수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지키는 것이 우선순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앞서 나온 괴물들의 욕망은 자신의 욕심을 가장 우선으로 두고 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진 이들은 인간이 되지 못한다.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모습이 괴물과도 같다는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 스위트홈 >에서 정의하는 ‘인간’은 선(善)이며, 자신의 욕망에 잡아먹힌 채 주인공에게 해를 가하는 괴물들은 악(惡)이다. 그런데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원래 모습을 떠올려보면, 아이돌이 되기 위해 가혹한 다이어트를 해서 음식을 갈망하게 된 연습생, 아픈 몸의 수혈을 위해 피를 갈망하게 된 환자일 뿐이다. 프로틴을 원하는 근육질의 괴물이나,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육상선수 출신의 괴물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능인 욕망 탓에 괴물의 몸속에 갇혀버린 그들을 ‘인간적’이지 않다고 섣불리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괴물로 변해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그만큼 그 욕망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무 욕망도 없었던 현수가 꿈속에서 그곳이 가짜로 이루어진 공간인 것을 알아차린 것은 욕망 없음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첫 시즌만이 공개된 < 스위트홈 >은 현수와 같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반인반괴로 살아가는 인물이 더 등장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끝이 난다. 아직 시리즈의 초반이기에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에서는 ‘욕망’을 괴물로 정의하고 선한 ‘인간성’과 대립시키고 있다. < 스위트홈 >의 다음 시리즈들에서도 인간성을 선하게, 욕망을 악하게 구분 지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한 선악의 판단은 지켜볼 우리의 몫일 것이다.
팀소동 케이
사부작대길 좋아하는 변덕스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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