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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이훤 Jinwoo Hwon Lee 展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 시리즈


  작가의 말 / ARTIST STATEMENT

  집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시작되지만 늘 공간의 형태에 그치는 건 아니다. 다 다른 모습으로 발생한다. 누군가 거기 있고 보호된 공동체가 이루어졌음을 환기하지만 닫힌 문에서부터 타인 됨을 상기하기도 한다. 안과 바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와 '그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타인 되는 감각은 시공간에 관계 없이 일어난다. 경계를 깨달을 때 우리가 어디 자리해 왔는지 알게 된다. 집은 그런 역할을 한다. 타지에서 마침내 내가 바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점차적이나 계속 경험하기 때문이다. 집은 그때부터 정서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부재-감이 지속되면 하나의 정체가 된다. 집 내부에서 바깥을 경험하거나, 바깥에서 가장 내밀한 집을 획득하기도 한다. '사이'의 공간을 오간다.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 시리즈는 이 같은 경험을 은유의 형태로 기록한 작업이다. 움직이는 집과 움직이는 우리에 대해 그것을 오가는 동안 경험한 세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다시 새 날. 갓 태어난 마음은 어디 머물까. 오늘 그것은 어디 머물 수 있을까. 금새 떠나야 할 지도 모르지만 잠시 있기로 한다.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


  Most homes beget from a physical place. For some, however, home occurs in all forms. While reminding us of the most intimate moments, it also renews the premise that we are others ㅡ from the closed door on.

  Home slips. We lose where to go. This happens even we are at our very home. I've resided in different lands; I have come to accept that I will never be wholly one of them or one of us. This experience repeats. Your home, then, turns into an emotional state.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is a series of metaphors. It speaks of the ever-returning placelessness. Both sense of belonging and that of absent home can occur at the same time. And they take place in the safest places. To me, no continuous homes exist. All homes are temporal. This belief led me to seek home from the most emotionally attached places: fruit stores, bookshops back home, familiar alleys and etc.

  Another day, I face. Where does a bear born emotion go? It stays there. And it stays here. I may leave soon.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이훤 Jinwoo Hwon Lee

시인, 사진가. 텍스트와 사진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분리-고립-소외 사이의 감정에 대해 쓰고 찍어왔다

개인전 / SOLO EXHIBITION

2019  Life Framer Gallery

2020 Aviary Gallery

단체전 / GROUP EXHIBITION

High Museum Curator
Magnum photographer
Colorado Photographic Center of Arts Curator
 Atlanta Celebrates Photography Director

Manifest Gallery Curator
An usual Magazine Visual Director
Broad Magazine Editor
등 다수의 큐레이팅 공동전 참여

저서 / BOOKS

2014  「꼬릴 먹는 꼬리」 外 4편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6 시집  『너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2018 시집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2019  사진 산문집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2019  단행본 『캘리로 읽는 시』 (공저)

2019 앤솔로지 『어느 푸른 저녁』
2021 앤솔로지 『나는 왜 간단한 그 고백 하나 못하고』 등




주요 발표 작품 / NOTABLE PUBLICATIONS

2016  《Joong Ang Daily 중앙일보》
2017, 2019  《현대문학》
2017  《문학과사회-하이픈》
2018  《ORDINARY》 Cover, feature
2018  《COSMOPOLITAN》 KOREA
2018, 2019  《MONTHLY PHOTOGRAPHY 월간사진》
2018, 2021  《AROUND》 Cover, feature
2019, 2020  《LENSCRATCH》Feature Exhibition
2019- 2021  《PAPER 페이퍼》
2019- 2020  《시인동네》
2019, 2020  《AN USUAL 언유주얼》
2020  《FALL LINE EXPREESS》 Feature
2020  《HUMBLE ARTS FOUNDATION》 Feature
2020  《ESQUIRE》 KOREA
2020  『오늘의 착각』 포토-진
2020  『The Bell Jar』 (Sylvia Plath) Cover
2020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커버
2020  《BROAD》 Story
2020  《Be:lit》 Feature
 

한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큐레이터 매리 스탠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젊은 사진가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작품 소장처 / Collections
Infinite Art Museum Collection
Life Framer Collection
Manifest Gallery Collection


1.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I, 26x20, Pigment Print, 2020


바슐라르*에 의하면 집은 기하학적인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인간과 집은 역동적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의 말에 따르면 집에 거주하는 것은 

인간생활의 위대한 통합력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훤은 매끄러운 세계 안쪽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간다.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집'과, '집'을 에워싸고 있는 사물과 풍경에 집중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균열의 징후를 발견한다.

*가슈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민음사, 1990, 157-199p


2.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II, 26x20, Pigment Print, 2020


징후가 심각하거나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집, 차, 옷걸이, 책, 아스팔트 등과 마을을 천천히 돌아보듯
일상적인 면모들을 보여주고 안정적인 구조를 취한다.

사실 균열의 징후는 푸른 잔디처럼,
마른 땅 위로 뜨문뜨문 솟아난 잡풀처럼,
좁고 길게 무성해진 나무들처럼
이곳 저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이 초록은 저 초록인가?


7.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10x13.5, Pigment Print, 2020



장소와 관련한 자료를 기록화 하는 것은 
장소 자체뿐만 아니라 그곳을 시장, 마을, 골목 등 
특정한 장소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삶을 
축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훤은 이러한 기록의 과정에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다양한 상호연관성 속에 위치한다.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민자의 무의식이 투명되고,
그것은 목차를 나눈 것처럼 흘러가다
한 번씩 강조수를 둔다.

"나는 바깥입니까, 안입니까?"

그런 다음, 색채를 완전히 대비시켜 교차함으로써
장소의 경계를 유리창 깨듯 내리치는 것이
바로 이훤이 구성한 작품 배치의 매력이다.



11.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22x26, Pigment Print, 2019

14.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26x20, Pigment Print, 2020



이훤은 우리로 하여금

기존에 인식하던 내면의 '집' 이미지와,
발견하진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인식하던 '집'의 이미지가
어떤 차이를 갖고, 
얼마나 다른 경험을
끌어안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바로 존재-부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시작이다.

나는 그 내밀한 장소들을 유심히 읽어내면서
중간 중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익숙하던 풍경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낯섦이 되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무던한 현실로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충격 요법이었다.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 기분이 우울해졌다. 갑자기 하늘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기댔다. 죽을 것처럼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공포에 떨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가늠할 수 없이 엄청난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절규가
자연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개인이 자신을 존재를 구현하고 입증하는
‌대표적인 공간은 '집'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상징하는 바는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의 과정을 살펴보는
중요한 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이 한 가지 장소에서만
형성되고 정립되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과정, 우리가 지하철을 타고 지나치는
하나의 역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서는 이민자 뿐 아니라
‌이동하는 인구, 즉 유목민의 정서와도 비슷한데
‌현 시대에서 유목민은 바쁜 현대인으로 또 비유된다.

*유지현, 민족문화연구 제 47호 개인의 정체성과 집의 공간 분화 248p


24. < Home is Everywhere and Often Nowhere > series, 18x24
, Pigment Print, 2019


어디에라도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주체지만 주체가 아닌 타인됨,
즉 내면의 '타자'는 결국
‌누군가 그 공간에 심어놓은 가치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말한다.


결국 이곳이 "집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와
나는 "안인가, 바깥인가"라는 질문의 판가름과 선택은
‌자기 자신의 몫인 셈이다.
‌ 



기록을 읽는다는 것. 그것이 글로 표현되는 것은
기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유하는 사람에 의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의미화라는 고정화된 뿌리를 찾는
정주행위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 측량하고 지도화해 나가는,
열려 있는 유목민적 여정*이다.

결국 이 전시 자체가 앞선 질문과 고민에 대한
이훤의 선택이자 미디어로 던지는 메시지이며,
앞으로 작가가 탐색하고 발견해나갈
분리되고, 소외되고, 또 고립된 세계들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되었다는 말로
전시의 서평을 마무리한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역) 2003, 천 개의 고원, 28p 새물결


서평, 한소리

‌웹진 아는사람 기획자
아트비트 갤러리 큐레이터